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대통령실과 사법부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사법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서면 제청'한 데 대해 반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한 절차인 만큼 서면 제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조 대법원장은 24일 변호사대회 행사에서 "'법의 지배'라는 가치는 더욱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대법관 제청권의 독립성을 우회적으로 내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이 제청을 반려하면 대법원은 새 후보자 검토에 착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도 지금처럼 서면 제청과 반려를 되풀이하며 힘겨루기를 이어갈 것인지 답답한 상황이다.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할수록 재판 지연과 업무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더불어민주당은 '2차 사법개혁' 추진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김민석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는 대법관 후보 추천 직후 해산하도록 한 현행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자가 반려되더라도 대법원장이 새로운 추천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후보군을 다시 짜지 못하도록 권한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여권이 제청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자 조 대법원장이 기존 추천위 결과를 백지화하는 방식으로 맞서려 했다는 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그러나 추천위를 제청과 동시에 해산하도록 한 데는 추천위가 상설 권력기구로 변질되거나 재추천을 둘러싼 로비의 통로가 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취지도 있다.이 때문에 여권 법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나온다고 한다. 정파적 이해에 따라 법원조직법을 서둘러 고칠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법원행정처 폐지를 추진하는 한편 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 질의에 조 대법원장의 출석까지 요구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법부의 인사·행정 체계를 일방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발상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가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불러 직접 질의한 전례는 없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위를 존중해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갈등의 골이 깊더라도 사법부 수장을 법사위 증인석에 세우려는 요구는 철회하는 게 옳다.
사법부 역시 헌법이 부여한 대법관 제청권이 무제한적 권한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헌법이 대법관 인사를 대법원장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 국회의 동의로 나눈 것은 어느 한 기관도 인사권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장치를 둔 것이다. 여권과 사법부는 체면과 주도권을 앞세운 기 싸움을 멈추고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타협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사법 공백을 막는 것이 양측의 자존심보다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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