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PCIe 6.0 기반 기업용 SSD(eSSD) 'PM1763'. / 사진=삼성전자


글로벌 빅테크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낸드플래시 시장의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AI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데이터가 급증함에 따라 대용량 정보를 저장하면서도 빠르게 읽고 쓸 수 있는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의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부가 eSSD를 앞세워 시장 선점에 나선 가운데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도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며 한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26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낸드 시장 규모는 지난해 730억달러(한화 약 101조원)에서 올해 3601억달러(499조원)로 5배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낸드 시장 성장의 중심엔 eSSD가 있다. 글로벌 eSSD 시장 규모는 지난해 241억달러(33조4000억원)에서 올해 1540억달러(213조원)로 6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AI 서버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량이 폭증한 데다 AI 추론 과정에서도 모델과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호출해야 해 기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보다 속도가 빠른 SSD 수요가 커진 영향이다.

한국은 낸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올해 2분기 글로벌 낸드플래시 출하량 기준 삼성전자가 25%,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을 포함해 22%의 점유율로 세계 시장 1·2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AI 인프라에 최적화된 PCIe 6.0 기반 eSSD 'PM1763'을 양산하며 초격차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제품은 9세대 V낸드와 4나노미터 기반 컨트롤러를 탑재했으며 16TB 제품의 연속 읽기·쓰기 속도는 각각 초당 2만8400MB와 2만1900MB에 달한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에도 탑재될 예정이다.

최장석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팀 상무는 "PM1763은 글로벌 고객사의 차세대 AI 플랫폼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고 제품 검증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이번 제품은 고객사의 AI 모델이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핵심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AI 서버용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낸드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평택캠퍼스 P5에서 차세대 낸드 생산라인 구축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SK하이닉스도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300단대 낸드 공정을 기반으로 고용량 eSSD 시장 대응을 강화하는 동시에 충북 청주에 신규 낸드 생산 거점인 M17을 건설한다.

SK하이닉스는 청주에 총 100조원을 투자하고 이 가운데 M17에 8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M17은 내년 착공해 2029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한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중장기 eSSD 수요를 겨냥해 생산능력 자체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이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YMTC는 올해 2분기 글로벌 낸드 출하량 기준 1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일본 키옥시아를 제치고 처음으로 3위에 올랐다.

YMTC는 미국의 수출 규제로 첨단 반도체 장비와 기술 확보에 제약을 받고 있지만 중국산 장비 활용과 공정 최적화를 통해 공급망 독립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AI발 고용량 스토리지 수요가 커지면서 중국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상하이증시 커촹판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최대 330억위안(6조8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으로 이 가운데 208억위안(4조3000억원)은 생산라인 고도화에, 122억위안(2조5000억원)은 차세대 낸드와 고속 저장장치 연구개발에 투입할 예정이다.

다만 YMTC를 당장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동등한 수준의 경쟁자로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하량을 기준으론 세계 3위까지 올라왔지만 범용 시장을 기반으로 한 점유율 확대이기 때문이다.

고부가 eSSD와 글로벌 데이터센터 고객 확보, 제품 신뢰성·펌웨어 등 종합적인 SSD 솔루션 경쟁력에서는 아직까진 한국 업체와 격차가 있다는 평가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높은 신뢰성이 필요한 eSSD 등 고부가 데이터센터 시장에대한 YMTC의 진입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거대한 내수 시장과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낸드 시장 경쟁의 핵심은 누가 더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고객사가 원하는 고용량·고성능 낸드를 더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