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시대]에서 열린 '청년 숙의토론'에서 참석자 11명은 '2030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주제로 3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조현호 기자


"우린 어쩔 수가 없는 세대인 것 같아요."
지난달 4일 [시대]가 마련한 '청년 숙의토론'에서 일자리, 자산 격차, 국민연금, 정치 대표성 등 다양한 주제로 열띤 토론을 이어가던 도중 김준호씨(24·한양대)가 푸념하듯 말했다. "지금까지 토론 중에 나온 여러 대안은 모두 좋은 얘기인데, 사실 너무 오래 걸리는 일들이잖아요. 결국 어떤 세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어쩔 수 없는 세대'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개혁은 당장 시작해도 수년, 수십 년이 걸린다. 사회가 달라질 때쯤 지금의 2030세대는 이미 취업과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의 시기가 지나버릴지 모른다.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보다 청년의 인생이 흘러가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란 체념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이호엽(30·회사원)씨가 말을 받았다. "공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분노해야 해요. 그렇게 만들어 놓은 세대가 누구냐는 거예요." 함께 겪는 현실 속에서 한쪽은 체념했고, 다른 한쪽은 분노했다.



지난 6월 자발적으로 참여한 수천 명의 청년들이 이뤄낸 '참정권 시위' 이후 정치권은 다시 2030을 주목하고 있다. 그들을 끌어안기 위한 대책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청년들은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원하는데, 정치권은 단기 처방에 머물고 있어서다. 청년들은 이를 꿰뚫어 보고 있다. 그래서 더 깊이 체념하거나, 더 크게 분노한다. [시대]는 2030이 원하는 변화가 무엇인지 날 것 그대로 듣기 위해 대학생과 직장인 등 청년 11명으로 숙의토론위원회를 구성했다. 과연 그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을까.

"정년 연장이 노후 대책? 그럼 우리 연금은?"

[시대]는 청년들이 원하는 사회 변화가 무엇인지 날 것 그대로 듣기 위해 청년 숙의토론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진은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시대]에서 열린 청년 숙의토론 모습. /사진=조현호 기자


"기업은 경력자를 선호하고 AI는 일자리를 빼앗고 있어요. 대졸 신입은 뽑지도 않아요. 좋은 대학 가면 취직된다더니 현실은 이게 뭡니까."(조현준·22·중앙대)
"인문계 취업은 더 막막해요. 제 주변 친구들은 예외 없이 로스쿨이나 회계사, 공무원 시험을 준비에요."(정해림·24·고려대)
"그런 고소득 직업이 아니면 서울에서 살기 힘드니까요. 집값 오르는 정책에 표 몰아주고 '너희들은 무한 경쟁하라'는 게 기성세대잖아요."(이호엽)

청년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역시 취업이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 충돌로 넘어갔다.
"노인빈곤을 생각하면 (정년 연장에) 찬성해요. 은퇴 시기와 국민연금 수령 나이 사이에 소득 공백이 있잖아요. 다만 청년 일자리를 생각하면 임금피크제를 확대해 (고령자의) 인건비를 줄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조현준)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정년 연장을 보장받는 60대가 과연 빈곤한 사람들일까요?"(이호엽)
"맞아요. 정년 연장 혜택을 받는 분들은 대부분 대기업 정규직이잖아요. 노인빈곤은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정년까지 못 버틴 분들의 얘기 아닌가요?"(박정은·27·회사원)
"노후 대책은 주택연금이나 퇴직연금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풀어야죠. 취업 연령도 늦어지는데, 더 늦게까지 일하는 구조가 맞는지 모르겠어요."(천성현·21·성균관대)

정년 연장 논란은 노후 대책으로 이어졌고, 청년들의 노후와 직결된 국민연금 문제에서 폭발했다.
"정년 연장이 문제가 아니에요. 국민연금은 청년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구조가 됐잖아요. 보험료 더 내도 돼요. 하지만 더 낸 만큼 받을 수는 있는 건가요? 더 낸 만큼 더 달라는 요구가 무리한 거예요?"(김지우·23·한양대)
"지난해 정부가 제시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40대와 50대 이상은 빠르게, 20대는 천천히 올리는 거였는데, 결국 모든 세대가 동일하게 늘어났어요. 자동조정장치나 신·구연금 분리 같은 구조개혁이 싹 무시됐죠. 그걸 보면서 엄청 화가 나더라고요. 아마 그때 정치 효능감이 바닥을 쳤고, 지금까지 회복이 안 되는 것 같아요."(조현준)
"만약 프랑스였다면 (청년들이) 거리에 나와 짱돌과 화염병을 던졌을 거예요."(이호엽)
"합의가 안 된 게 아니고 아예 묻힌 겁니다. 그때 (우리가) 뭐라도 해야 했는데…."(조현준)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시대]에서 열린 청년 숙의토론에서 참석자 박정은씨는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장기전세주택 조건에 맞춰 커리어를 쌓겠다"는 자신의 인생 계획을 소개했다. /사진=조현호 기자


'결혼은 패널티' 정부 정책 바꿨다지만…

국민연금을 향한 성토가 토론장을 휩쓸고 지나간 뒤 이번엔 현실의 고민이 밀려왔다. 바로 '집' 문제다. 취업해도 저축으로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한 꿈. 그렇다 보니 정부의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주거 정책 소득분위 자체가 잘못 설계돼 있어요. 2인 가구는 1인 가구 소득 기준의 2배여야 하는데, 그보다 못 미쳐요."(박가현·32·회사원)
"그래서 소득 없을 때 빨리 결혼하거나, 결혼하고도 혼인 신고를 안 하는 친구가 많은 거예요."(이호엽)
청년 1인 가구일 때 받을 수 있던 대출 지원이나 청약 혜택이 결혼해 2인 가구가 되는 순간 합산소득 기준 때문에 끊긴다는 지적이다.
"전 집 사는 건 포기하고, 국가 지원 혜택만 계속 받아보려고요. 돈은 신혼부부 장기전세주택 입주 조건에 맞춰서만 벌 거예요. 거기서 살다가 애를 낳으면 또 연장할 수 있잖아요. 남들처럼 '영끌'해서 집 사면 대출 갚다가 죽을 것 같아요. 이 나라 복지 시스템에 날 꿰맞출 수밖에 없어요."(박정은)

[시대] 숙의토론에서 "결혼은 인센티브가 아니라 페널티"라는 청년들의 분노를 확인하고 나흘 뒤인 지난달 8일, 공교롭게도 이재명 대통령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정책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정부는 8·13 '부동산 종합대책'에서 신혼부부의 정책 대출 소득요건을 완화하고, 4억원 이하 비아파트를 구입하는 청년에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80%까지 빌려주는 내용을 발표했다.

오히려 청년들은 되묻는다. 왜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라야만 정치권은 응답할까. 숙의토론이 세 시간째로 향해 갔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청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
국가 복지 혜택을 최대한 받아낼 수 있도록 '기준선 미만의 삶'을 살겠다던 박정은씨의 답에 청년들의 공감을 나타냈다. "다수결 아닐까요?" 청년 인구가 적다 보니 정치적 대표성을 갖기 어렵고, 정치권도 청년 의제를 우선순위에 놓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향후 출생아 수가 늘어나면 지금 청년은 미래에도 정치적 주류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보태졌다.
"정치인들은 표가 안 되면 무시하잖아요. 청년 목소리를 높이려면 선거권 연령 하향이 필요해요."(김준호)
"비례대표 확대하고, 청년이 공천 과정에 참여하도록 보장해야 해요. 자신의 선택이 정치에 반영되는 경험이 쌓여야 정치 효능감도 높아질 것 아니에요."(이희원·21·서강대)

[시대]는 청년 숙의토론위원회의 토론을 거쳐 '2030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4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①국민연금, 더 많이 내고 못 받는 게 공정한 건가요?
②내집마련, 300만원씩 모아도 못 살 집 포기할래요!
③정년연장, 65세? 우린 60세까지 일할 수나 있나요?
④청년정치, 우린 영원히 소수로 남는 것 아닌가요?
지금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