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동행미디어 시대 고문



상법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모두 세 번 개정되었다. 개정 내용은 거의 전부가 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것들이다. 그중 지난해 7월 22일 공포된 1차 개정 내용 중 주식회사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상법상 주식회사의 이사는 '회사'에 충실의무를 졌다. 그런데 상법이 개정되어서 이제 이사는 '회사와 주주'에게 충실의무를 진다. 상법 제382조의3 제1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충실의무를 진다. 회사가 잘 되도록, 회사가 돈을 많이 벌도록 열심히 일해야 하고 회삿돈이나 자산을 축내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특히 회사에 해를 끼치면서 개인적 이익을 챙기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주주들이 손해를 본다.

대형 상장회사에는 주주가 수백만명까지 있다. 삼성전자는 약 460만 명이다. 그래서 이사가 주주 모두를 위해 일을 제대로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된 상법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이사가 모든 주주 각자에게 직접 충실의무를 지게 한다. 이사가 일부 주주만 좋도록 일하면서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많았다. 여기서 일부 주주란 이사 선임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력이 큰 주주다. '오너'라고 부른다.



입법 취지는 좋은데 다들 헷갈려 한다. 수십만, 수백만명에 이르는 주주는 크건 작건 회사경영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을 것이고 이해관계도 다를 수 있다. 회사의 투자가 잘된 투자인지 아닌지도 주주마다 생각이 다르다. 그런데 새 상법에 따르면 그 모든 주주 각각에게 충실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사는 비난이나 퇴출에 그치치 않고 법률을 위반하게 된다.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문제는 집행할 방법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사의 주주 전원에 대한 충실의무 이행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그 규칙은 법원이 집행할 방법이 없다. 그러면 왜 법률은 그렇게 고쳐졌는가? 왜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먼저 그런 법률을 만들었고 계속 운용하고 있는가?

쉬운 답은 '오해'다. 미국 회사법은 주식회사 이사들에게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의무를 지우지만 그 주주는 '주주 전체'다. 개별 주주가 아니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법률 운용상 어려운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교과서나 판례집을 보아도 이사의 개별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을 다룬 사례가 거의 없다. 주주가 몇 없는 소형 비상장회사 사례가 가끔 있을 뿐이다.

미국법이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에 더해서 주주 전체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이사가 주주들의 이익까지 고려해서 회사의 이익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법률의 해석을 '개별 주주의 이익'이 아닌 '전체 주주의 이익'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랜 세월 발달해온 미국 회사법의 어려운 대목이다. 소송이 거의 없어서 학설도 발달되지 못했다.

국회가 법률을 개정할 때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보다는 이사의 전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라는 개념을 사용했더라면 불필요한 논란과 해석의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규칙이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소형 회사에서 대주주 경영자(이사)가 소수주주(동업자)에게 피해를 주면서 전횡을 부릴 때다. 그런 경우 주주대표소송은 비싸고 의미도 없기 때문에 소수주주가 바로 경영자에게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입하기 위해 상법을 고치느라 많은 사람들이 애썼다. 그런데 사실 꼭 하지 않아도 되었을 작업이었다. 선언적 효과가 있고 정치인들은 점수도 땄을 것이다. 그러나 상법 개정은 민법 개정 못지않은 신중을 기할 일인데 경제가 커지고 자본시장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유권자 동향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손을 많이 댄다. 필요하면 고쳐 써야 하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김화진 고문은 회사법·자본시장법과 기업지배구조 분야의 권위자다. 독일 뮌헨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대 로스쿨 교수를 지냈다. 미시간대 로스쿨 석좌교수, 삼성증권 이사회 의장, 현대모비스 이사회 선임독립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