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 연락처를 물어도 말이 없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하니 고개를 들고 저를 가만히 쳐다만 보더라고요."
지난 6월 열두 살 지적장애 소년 현수(가명)를 보호했던 식당 직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무언의 구조 신호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현수는 결국 교회 관계자들과 함께 가해 현장인 교회로 되돌아갔다. 현수가 교회에서 학대로 사망하기 53일 전의 일이다.
충남 천안에서 현수의 흔적을 따라가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마주했다. 현수를 구할 수 있었던 공공 영역의 기관은 모두 6곳. 경찰과 천안시 위기아동대응팀, 아동보호전담기관,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그리고 현수가 다닌 학교 2곳이다. 하지만 어느 곳도 현수를 구하지 못했다.
경찰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 4건과 보호조치 신고 3건에도 현수를 번번이 학대 공간으로 돌려보냈다.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들은 현수의 아동학대 신고 4건을 두고 지난 5년간 10차례 넘게 조사했지만, 가해자인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을 안전한 보호자라고 오판했다.
아동보호전담기관은 2024년 5월부터 현수를 사례 관리 대상자로 지정해 아이의 안전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오고 있었다. 현수의 안전을 어떻게 모니터링했는지 묻자 기관은 답변을 거부했다. 학교는 현수의 외할머니가 아동학대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을 알지 못한 채 아이의 취학 면제를 승인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도 지난달 4일 경찰청으로부터 현수의 아동학대 사건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현장 조사를 나간 지자체 담당 공무원과 통화한 뒤 '조사가 마무리됐고, 학대 판정만 남았다'는 담당 공무원의 말에 즉시 현장에 가지 않았다. 그 시각 현수는 교회에 사흘째 묶여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숨을 거두기 불과 15시간 전이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이 곳곳에 있는데, 왜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2003년 발표된 영국의 '래밍 보고서(Laming report)'를 살펴봤다. 만 8세 소녀 빅토리아 클림비가 잔혹한 학대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가의 아동보호 체계를 전면 검토한 432페이지 보고서다. 빅토리아도 런던 자치구 4곳, 경찰 아동보호팀 2곳, 병원 2곳, 아동학대방지협회 산하 전문센터 등 여러 기관이 관여했지만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 당시 앨런 밀번 전 보건부 장관은 하원 본회의에 참석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관련 기관들이 개입해 빅토리아를 구할 기회는 적어도 12번이 있었다"고 했다.
보고서는 빅토리아 사건을 국가 아동보호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최우선 과제로 책임성 강화를 지목했다.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지 못했을 때 각 단계별로 일선 담당자부터 최고위직까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보호 업무 태만이나 사망사고 발생 시 징계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각 신고가 위험 신호의 누적이 아니라 개별 사건으로 처리된 점을 총체적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기관별로 흩어진 정보를 연결하지 못하면 어느 기관도 피해 아동이 처한 전체 상황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현수도 마찬가지였다. 112에 접수된 현수의 보호조치나 실종신고는 관계 기관에 전달되지 않았다. 학교도 현수 외할머니의 아동학대처벌 전력을 통보받지 못했다. 즉각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묻자 경찰은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아이가 경찰 조사에서 목사에게 가고 싶다고 했다"고 경찰에 공을 넘겼다. 아동학대전담기관은 "시에 물어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누구도 책임 있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현수는 제도가 없어 죽은 게 아니다. 현수의 죽음은 대한민국 국가 아동보호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다. 우리가 지금까지 눈감아온 '익숙한 실패'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 아동학대처벌법은 12번 개정됐다. 그 제도 안에서 책임 구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되물을 때다. 아무리 많은 보호기관을 만들고 권한을 준다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제도는 그냥 없는 제도다.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아이를 떠나보낸 뒤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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