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 전현무의 즉흥 여행으로 방송했지만 사전기획과 조작 논란이 불거진 MBC '나혼자 산다'. 제작진이 세 차례 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MBC 방송 화면 캡쳐.



예능은 연출의 예술이다. 카메라가 일상에 들어서는 순간 현실은 재구성된다. 제작진은 볼 만한 장면을 찾고, 출연자는 렌즈를 의식한다. 편집은 며칠의 시간을 한 시간의 이야기로 압축한다. 시청자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리얼리티 예능에 연출이 전혀 없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시청자가 리얼리티 예능에 마음을 여는 데는 최소한의 약속이 전제된다. 프로그램이 내건 핵심 설정만큼은 사실이라는 믿음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일상, 낯선 곳에서 맞닥뜨린 돌발 상황, 출연자 사이의 관계가 실제일 때 편집과 연출도 설득력을 얻는다. 그 약속이 깨지는 순간 시청자는 '재미를 위한 장치'로 웃어넘기지 않는다. 몰입한 시간을 기만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 MBC '나 혼자 산다' 전현무의 카자흐스탄 알마티 여행 편을 둘러싼 논란도 이 지점에서 불거졌다. 방송은 전현무가 인천공항에서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항공권과 숙소, 차량을 직접 구하는 '무계획 여행'을 그렸다. 바쁜 일상에서 배낭 하나 들고 훌쩍 떠나는 모습은 대리만족과 해방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일탈의 충동을 건드린 셈이다.

그러나 방송 뒤 의문이 이어졌다. 적지 않은 촬영 인력이 항공권 발권부터 현지 이동, 촬영 허가까지 모두 즉석에서 해결할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이었다. 알마티시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관광 당국의 촬영 지원 사실을 언급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제작진은 촬영 지원이나 협찬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엿새 뒤 "금전적 지원은 없었으나 행정 절차와 현장 진행을 위한 촬영 협조는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 4일 나온 세 번째 입장문에서는 사전 준비의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났다. 제작진은 전현무가 카자흐스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스태프 항공권을 미리 발권하고 현지 촬영 협조도 요청해 뒀다고 밝혔다. 전현무가 당일 공항에서 항공권을 직접 발권한 것은 사실이지만, 촬영을 위한 조건은 이미 상당 부분 마련돼 있었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해 혼선을 키웠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거듭 달라지는 설명에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제한된 일정에서 선택 가능한 여행지가 한두 곳이 아니었을 텐데, 제작진은 어떻게 카자흐스탄을 미리 특정할 수 있었을까. 현지에서 출연자가 특정 목적지를 향해 밤샘 운전을 한 것도 사전에 짜인 동선은 아니었을까. 제작진은 촬영 협조는 받았지만 협찬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방송 협찬이 금전과 현물뿐 아니라 장소와 인력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은 다름 아닌 방송 관계자들이다.

해외 촬영을 위해 현지 기관과 접촉하고 안전을 점검하는 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제작진의 당연한 책무다. 쟁점은 그 준비가 방송의 핵심 서사인 즉흥과 무계획에 부합했느냐다. 출연자의 선택 뒤에 제작진이 신속하게 필요한 절차를 밟은 것이라면, 그 과정 역시 방송의 일부로 솔직하게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사전 협의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운 조건을 미리 맞춰놓고 현장의 우연인 양 구성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효과적인 연출이 아니라 현실을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한 속임수다. 제작진은 해명을 거듭하며 얼버무릴 게 아니라 출연자의 선택이 어느 정도 열려 있었는지, 제작진이 어느 범위까지 동선을 준비했는지 자세히 밝힐 책임이 있다.

방송계에는 장르의 약속을 어겨 신뢰를 잃은 사례가 적지 않다. 1998년 KBS '일요스페셜'은 야생 수달의 생태를 기록한 듯 방송했으나, 보호 상태의 수달과 세트를 활용한 사실이 드러나 사과방송을 했다. 우연한 순간을 포착한 듯한 화면이 실은 통제된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자연다큐의 핵심 전제를 흔들었다. TV조선 '아내의 맛'은 관찰 예능의 일상성을 둘러싼 의혹 끝에 과장 연출을 인정하고 시즌을 종영했다.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순위 조작은 시청자 유료 투표를 훼손해 형사처벌로 이어졌다. 사안의 성격과 무게는 다르지만 시청자와의 장르적 약속을 저버렸다는 점은 같다.

이번 사안을 개별 제작진의 판단 착오로만 넘길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혼자 산다'는 오랫동안 MBC를 대표해 온 간판 프로그램이다. 공영성을 내세우는 방송사라면 프로그램의 핵심 설정과 사실관계가 어긋나지 않는지, 논란에 대한 설명은 정확하고 충분한지 살펴야 한다. 이는 담당 제작진에게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시청자의 신뢰를 시청률이나 광고 수익의 기반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적 책임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리얼리티 예능의 핵심 설정에 영향을 주는 사전 협조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시청자에게 공개하는 투명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논란이 불거졌을 때 책임 있게 설명할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인기 프로그램일수록 '재미를 위해 어디까지 연출할 수 있는가'를 엄격히 물어야 한다. 시청자는 제작진 개인이 아닌 MBC라는 이름을 믿고 채널을 선택한다.

연출은 예능의 기술이다. 그러나 속임수는 방송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공감은 그럴듯하게 꾸며 낸 설정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줄 때 생긴다. 지금 MBC가 답해야 할 것은 협찬이냐 협조냐라는 말의 차이가 아니다. 시청자와 맺어 온 약속을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다.


이상복 시대 논설위원 겸 미디어랩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