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방산업계 관계자들과의 대화는 늘 한화그룹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 얘기로 끝난다. 업계 전반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인 만큼 의견도 분분하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형화가 필요하다는 시각과 국내 방산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선다.
한화그룹이 현재 보유한 KAI 지분은 15.89%다. 지난 5월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한 뒤 꾸준히 주식을 사들여 2대 주주까지 올라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31일 한화의 KAI 주식 취득을 승인했다.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 26.41%에 국민연금공단 8.75%를 더한 정부 측 지분이 35.16%에 달해 한화가 지배력을 확보한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한화가 그리는 청사진은 육·해·공·우주를 아우르는 종합 방산기업, 이른바 '한국판 록히드마틴'이다.
미국 국방·안보 전문매체 디펜스뉴스가 발표한 '2026 방산기업 톱100'에서 한화는 16위에 올랐다. 유럽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며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성장했지만 톱10 진입까지는 갈 길이 멀다. 완제기 개발·생산 역량을 갖춘 KAI가 한화의 빈틈을 채울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이유다. 같은 명단에서 KAI는 전년보다 8계단 내려간 74위였다.
KAI 노조는 인수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항공 분야에서는 공급업체와 고객사, 우주 분야에서는 경쟁업체로 얽힌 양사가 결합할 경우 협력 업체의 사업 기회가 줄고 시장 경쟁도 위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KAI가 완제기 생산에 필요한 부품사를 독립적으로 선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방산 4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형화의 필요성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미국 역시 자국 방위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형화를 택했다. 냉전 종식 이후인 1993년 미국 정부는 주요 방산업체에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51개에 달했던 주요 방산 원청업체는 5개 대형사 중심으로 재편됐고 이 과정에서 록히드마틴도 탄생했다.
미국 정부가 대형화를 무조건 허용한 것은 아니다. 방산기업의 몸집이 커질수록 심사의 문턱을 높였고 독과점 우려가 크다고 판단하면 제동을 걸었다. 미 법무부는 1998년 시장 경쟁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해 록히드마틴의 노스롭그루먼 인수를 무산시켰지만, 2018년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노스롭그루먼의 오비탈ATK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당시 경쟁사 대상 고체 로켓모터의 비차별적 공급과 민감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방화벽 구축 등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형화의 이점은 살리되 시장 경쟁을 지킬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한 것이다.
미국보다 규모가 작은 국내 방산시장에서는 특정 기업으로 역량이 쏠릴 때 부작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부품업체의 사업 기회가 줄고 시장의 선택지가 좁아지면 장기적으로 경쟁과 혁신까지 약화할 수 있다. 한 기업의 성장이 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록히드마틴 탄생을 가능하게 한 것도 무분별한 독점에 제동을 건 것도 미국 정부였다. 한국판 록히드마틴 역시 기업에만 맡길 수는 없다.
수출입은행은 KAI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민영화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구체적으로 방위사업 발주 과정에서 다양한 업체가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중소 업체에도 사업 기회를 넓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화 역시 KAI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기존 협력 업체와의 거래 기회를 유지하는 등 실질적인 상생 방안을 내놔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맞설 한국판 록히드마틴이라는 거인은 필요하다. 거인을 키우는 과정에서 그 발밑의 국내 생태계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 그것이 대형화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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