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위원·아산정책연구원 객원 선임연구위원


인공지능 혁명은 군사 영역에도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지만, AI화를 다방면으로 가속화한다고 해서 미래전에서 승리한다는 믿음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극초음속 미사일, 최첨단 인공위성, 레이저 무기, 그리고 각종 유·무인 복합전투체계가 대세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전승의 핵심적인 필수 요인으로는 정확한 정치적 목표 설정과 정세 판단 능력, 군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의 유지와 강화, 그리고 정보 왜곡을 최대한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술적 우위가 정치적 승리를 결코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각각 본인들이 시작한 전쟁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대만을 해방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해 왔지만, 다행히 그런 징조는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만일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이 대만 침공을 감행할 경우, 푸틴과 트럼프와 같은 교훈을 얻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방대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고 지구촌을 몇 번이나 멸망시킬 수 있는 전략·전술 핵무기 보유국들이다. 하지만 왜 이들은 이러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을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전술적 우위를 정치적 우위와 전략적 성공으로 착각한 것이고 동시에 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유럽 전쟁 전략의 대가인 칼 폰 클라우제비츠가 강조한 것처럼 전쟁은 정치투쟁의 연속이라는 점을 간과했고, 고대 중국 전쟁의 대전략가인 손자가 지적한 '적을 알고 나를 알라'(知彼知己)는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 미국, 그리고 중국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군 고위 지휘부의 숙청이다. 물론 미국은 아직까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푸틴의 일인독재체제하에 군을 통제하고 있으며, 시진핑은 전례 없는 인민해방군 숙청을 지난 수년 동안 부패 척결이라는 명분하에 가속화하고 있다. 푸틴은 수주 만에 항복할 것으로 믿었던 우크라이나 정부가 4년 반 동안 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원인을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과 반러시아 프로파간다에서 찾고 있다. 무능한 국방장관과 총참모부, 그리고 러시아 재벌들의 자금 지원 부족 등에 장기화되고 있는 전쟁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한 이후 약 20명의 고위 군 인사와 민간 국방 관리들이 경질되거나 정치적 압력으로 사퇴했다. 트럼프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그동안 미 군부가 지나치게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강조한 나머지 실전 의지가 감소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개전 초기에 이란의 핵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의견을 밝힌 당시 미 국방정보국 국장도 경질했다.



트럼프는 2024년 두 번째 출마 당시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본인은 평화의 달인이라고 강조했고, 집권하면 지긋지긋한 전쟁의 유사(quicksand)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집권 후 트럼프는 약 9개의 크고 작은 군사작전을 명령했고, 2026년 2월 말 개시된 이란 공습이 수주 만에 이란의 항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7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이란 정권은 건재할 뿐만 아니라 이란혁명수비대를 포함한 주력 부대들은 항복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예전처럼 초강대국은 아니지만 여전히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삐뚤어진 리더십과 자국 군대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가원수의 비참한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영국 BBC에 의하면 2022년 2월 개전 이후 약 32만5000∼45만 명의 러시아 군인이 전사했고, 대략 100만 명의 병사가 부상했다고 한다. 미국 전략문제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하루에 약 1000∼1200명의 전사자·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사자는 약 10만∼15만 명으로 추산되며,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인민군 1만1000∼1만4000명 중 약 6000∼7000명의 전사자·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민간인 희생자까지 합치면 푸틴의 오만과 오판으로 야기된 비극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우리 군은 2024년 12월 계엄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계엄에 참여한 군인들은 엄벌해야 한다. 그리고 군의 정치적 중립과 대통령의 철저한 민주주의적 지휘·통제 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가속화되고 있는 북핵 위협,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영공 위협, 특히 중국 해군력의 증가, 그리고 트럼프의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취소 등 전방위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 군은 분명히 정의로운 싸움에 투입돼 승리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리더십도 군부의 올바른 목소리를 항상 경청해야 한다. 군부가 극도로 위축돼 정치적 눈치만 본다면 본연의 임무를 등한시할 수밖에 없고, 그 기회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 리더십과 군은 항상 운명을 공유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적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미국과 러시아의 사례를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정민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미 터프츠대 플레처법률외교대학원에서 국제정치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런던 국제전략연구소(IISS) 국제자문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IISS수석고문과 아산정책연구원 객원 선임연구위원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