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유명한 오페라를 대부분 한두 번씩 관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영국에 출장 갔을 때 런던 현지 극장에서 보고, 그 후 서울에서 공연할 때도 관람한 기억이 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 음악, 구성, 심지어 무대 장치까지 훌륭하지만 필자의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남자 주인공의 얼굴을 가리는 은색 마스크였다. 얼굴을 3분의 2쯤 가리고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곤 했다.
한국에서도 '복면가왕'이라는 유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가창력 있는 현역 또는 오래된 가수가 얼굴을 가리고 나와서 경연을 통해 승부를 가리는데, 패배했을 경우에만 얼굴을 공개하고 경연이 끝날 때까지 얼굴을 숨겨 시청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형식은 동서양을 통틀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서양의 귀족 사회에서 유행하였던 가면무도회나 우리나라 민속 중 하나인 탈을 쓰고 하는 마당극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면극 형태의 문화가 활발했다는 점은 숨겨진 가면 뒤에서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본성과 무관하지 않다. 평소 도덕, 법률, 윤리, 집단 규범의 틀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가면과 익명이라는 그늘에서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내부 고발 활성화를 위해 장려되고 있는 익명 게시판의 경우 자유라는 이름 아래 지나친 타인 비방, 흑색선전, 확인되지 않은 거짓 정보 유통 등의 장으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발견하곤 한다.
본인 활동의 익명성과 자유를 원하는 인간의 성향과는 정반대로 타인의 익명 활동에 대해서는 가면 속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서양의 가면무도회, 조선 시대의 탈 마당극, 최근의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까지 가면 형태의 상황극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가면 뒤에 숨겨진 정체가 궁금하다는 호기심과 결국에는 그 가면이 벗겨질 것이라는 기대 내지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AI를 발전시키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통해 엄청난 학습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 반도체 칩을 통한 컴퓨팅 파워의 확보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AI가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공개된 데이터를 크롤링 형태로 수집하는 것이 있다. 이 경우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개인정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도입한 개념이 '가명정보'라는 개념이다. 가명정보란 개인정보를 비식별 처리해 데이터의 활용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개인이 식별되지 않도록 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명정보에도 문제점이 있는데,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처리하는 과정에서 비식별 처리된 정보가 뜻하지 않게 재식별될 가능성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 강화 기술(Privacy Enhancing Technology·PET)'이 AI 시대에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 강화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AI를 활용한 해킹 기술도 발전하여 비식별 처리된 개인정보가 식별될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미토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외부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관음증(Voyeurism)으로 대변되는, 은밀한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AI 시대에 해킹 기술과 결합하여 개인정보 보호를 위협하고 있다.
가면 뒤 익명성의 그늘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AI 시대에도 그대로, 오히려 더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다. AI 시대의 허위 정보(Disinformation),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등이 만연하고 AI가 생성한 가짜 뉴스나 영상 등이 순식간에 사실로 둔갑하여 온라인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은 가면이나 가명정보 뒤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현상과 맥락이 닿아 있다. 이는 AI의 또 다른 문제점인 환각(Hallucination)과 결합되어 AI가 생성한 정보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AI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AI가 생성한 정보를 의심 없이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평소 궁금한 사항이나 미완의 과제를 AI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AI가 인간의 노동과 지능을 대신하고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나 ASI(Artificial Superintelligence)로 발전하는 경우에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AI는 결국 인간 사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AI도 인간 사유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AI에 대한 맹목적 의존에서 벗어나 AI가 만들어낸 세상과 현실 세계의 차이를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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