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지업계가 가격 인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시장의 신뢰부터 얻어야 합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업계라면 시장이 납득할 만한 근거와 과정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는 주문이 뒤따랐다.
제지업계가 인쇄용지 가격 인상에 나서자 인쇄업계가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가격을 둘러싼 갈등처럼 보인다. 논란은 가격 자체보다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을 믿을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인쇄업계가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인쇄용지 제조사 6곳의 담합을 적발해 총 33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6월 리니언시가 적용되면서 과징금은 1441억원으로 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제지업계는 펄프 가격과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을 이유로 든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펄프 가격은 지난해보다 두 자릿수 상승했다. 원가 부담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펄프 가격과 환율에 크게 영향을 받는 업종 특성상 원재료 가격 상승을 기업이 떠안을 수는 없다. 펄프값이 오르면 누군가는 그 부담을 져야 한다. 종이값을 언제까지 묶어둘 순 없다.
시장은 담합 이력이 있는 업계에 더 높은 설명을 요구한다. 원가가 올랐다는 사실과 가격 인상의 정당성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직후 이뤄진 가격 인상이라면 시장은 원가보다 가격 결정 과정부터 들여다본다.
제지업계가 해야 할 일은 인상 필요성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원가가 얼마나 올랐고, 기업이 얼마나 자체 흡수했으며, 지금의 인상폭이 왜 필요한지 시장이 검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이다. 담합으로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 없이 가격 인상만 이야기한다면 반발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이 묻는 것은 다른 질문이다. 왜 지금 올려야 하고 왜 이 정도 인상폭이어야 하는가. 가격은 숫자로 결정되고 신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종이값 논란의 본질은 가격이 아닌 신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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