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배는 참 부러운 상품입니다." 최근 만난 한 식품회사 임원의 말이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라면은 100원만 올려도 난리가 나는데 담배는 2000원씩 올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쉽게 잊히지 않았다. 담뱃값 때문이 아니었다. 가격을 정하고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방식이 그 한마디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에 '라면과장'과 '빵과장'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식품 가격이 원가와 수요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대표 제품 대신 비인기 품목 가격을 먼저 올린다. 신제품에는 높은 가격표를 붙인다.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설명이 따라붙고 여론의 검증이 시작된다. 원가 부담을 말하는 일보다 인상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일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가격을 정하는 시간보다 가격 인상을 해명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담뱃값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어느 날 큰 폭으로 뛴다. 논쟁은 늘 그때 시작된다. 2015년 담배 한 갑 가격은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은 2000원이라는 숫자에 쏠렸다.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었다. 그만큼 뛰어야 할 때까지 가격이 그대로였다는 사실이다.
추석을 앞두고 담뱃값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8000원, 1만원 같은 숫자가 소비 시장에서 소문으로 돌더니 정치권과 보건당국 안팎에서 오르내린다. 낯선 풍경은 아니다. 11년 전 가을과 장면이 겹쳐 보인다. 당시에도 담뱃값 인상론이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사람들은 인상 폭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정부는 논란이 무르익은 뒤에야 명분을 설명했다.
그사이 세상은 바뀌었다. 점심값이 올랐고 커피값이 올랐다. 최저임금과 물가는 해마다 새로운 기준선을 만들었다. 국민들은 새 기준선에 맞춰 소비를 조정하며 살아왔다. 담뱃값만 그 흐름에서 비켜나 있었다.
해외의 방식은 다르다. 호주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담배소비세를 매년 12.5%씩 인상했다. 흡연자들은 다음 해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미리 알 수 있었다. 프랑스는 장기간에 걸쳐 담뱃값을 꾸준히 조정해 왔다. 한 번에 크게 올리기보다 단계적 인상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인상 폭이 아니다. 예측 가능성이다. 작은 조정이 반복되면 충격은 분산된다. 시장은 새로운 가격에 적응할 시간을 확보한다.
가격은 압력솥의 증기와 비슷하다. 조금씩 빼내면 큰 소리 없이 지나간다. 출구를 오래 막아두면 압력이 쌓인다. 뚜껑을 여는 순간 더 큰 소음과 충격이 뒤따른다. 가격 인상 자체보다 인상 폭을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는 배경이다.
한국의 담뱃값은 11년째 멈춰 있다. 인상 폭을 둘러싼 소문만 무성하게 쌓였다. 전기요금과 지하철 요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움직여야 할 시점에는 그대로 둔다. 현실이 더는 버티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면 한꺼번에 조정한다. 인상 폭이 커질수록 반발은 거세진다. 정치적 부담은 더 커지면서 가격 현실화에선 발을 뺀다. 익숙한 풍경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는 가격을 올리지 않는 나라가 아니다. 올려야 할 때 올리지 못하는 나라에 가깝다. 시장 가격은 비판 속에서 조금씩 움직인다.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는 가격은 오랜 시간 멈춰 있다가 어느 순간 크게 뛴다. 논란이 커지는 시점 역시 그때다.
사람들은 8000원이냐 1만원이냐를 묻는다. 담뱃값 논쟁의 본질은 새 가격표가 아니다. 현실과 가격의 간격을 11년 동안 방치해 왔다는 사실에 있다. 가격은 오래 붙잡아둘 수 있지만 영원히 멈춰 세울 수는 없다. 미뤄둔 가격은 결국 현실을 따라온다. 청구서는 언젠가 도착한다. 11년의 공백에는 11년의 이자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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