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미페프렉스라는 상품명으로 허가 받은 임신중지약이 일리노이주의 한 여성 클리닉에 진열돼 있다.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을 막아 임신을 중지시키는 미페프리스톤 1정과 출산 때와 비슷하게 자궁 수축을 일으켜 임신 조직이 몸 밖으로 배출되게 하는 미소프로스톨 4정을 차례로 복용한다. /로이터=뉴스1



한성숙 국무총리가 16일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인공임신중지 약물의 단계적 도입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11일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7년 만의 정부 조치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당시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과도하게 침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같이 결정하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이로써 낙태 처벌 조항은 효력을 잃었지만, 법 개정 시한까지 국회가 후속 입법을 마치지 못했고 그 이후 법적 공백 사태가 이어져 왔다. 그동안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이 비교적 안전한 약을 국내에서 구하지 못해 해외에서 검증되지 않은 제품의 구입을 시도하면서 건강과 안전 문제가 불거지고, 건강보험 적용 미비로 개인 부담이 증가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됐다.



이번 정부 조치로 현대약품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한 '먹는 임신중지약' 미프지미소정의 품목 심사와 허가, 그리고 연내 국내 사용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 작용을 막는 성분과 출산 때와 비슷하게 자궁 수축을 일으키는 성분을 차례로 복용해 임신중지와 임신 조직의 체외 배출을 유도하는 약이다. 1988년 프랑스에서 상표명 '미프진'으로 처음 허가받았고, 200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으며 미국·일본·프랑스·영국 등 100여 개 국가에서 사용 중이다.

현대약품은 이미 2024년 12월 이 약품의 품목 허가를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임신중지의 방법으로 '인공임신중절수술'만 명시돼 있다는 이유로 심사를 보류해 왔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조기 도입 검토를 주문하고, 법제처가 지난달 "모자보건법 개정 전에도 임신중지 의약품을 품목 허가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린 데 이어 이번에 정부가 도입을 결정하면서 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문제는 2019년 헌재의 낙태 처벌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의사만 대상에 포함되고 약사는 제외됐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초기 2년간 임신중지약의 처방은 물론 조제까지 병원에서만 허용한 것은 의약분업 원칙에 어긋난다는 약사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소비자가 임신중지약을 약국에서 살 수 있도록 국회의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임신중지 허용 주수(週數)를 둘러싸고도 '제한 없는 전면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여성계 등과 '배출된 태아가 생존할 수 있는 주수에 중지약을 사용하면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법 집행 기관이 맞선다.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 가치를 둘러싼 헌재·여성계와 일부 종교계 사이의 인식 차도 상당하다. 헌재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이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소통과 숙의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이런 논란에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 그리고 복지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2019년 헌재 결정으로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헌법적 기본권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