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1일 오전 9시 원화 국제결제망 시범운영을 개시했다. 사진은 21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내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된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은행이 원화 국제결제망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금융기관에 계좌를 두지 않고도 자국 영업시간대에 원화를 결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시작된 시범운영에는 KB국민·우리·하나·신한은행 등 4개 국내은행이 참가했다. 한은은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 1월 본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본운영 단계에선 외국계 은행 등으로 참가기관을 넓히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기관과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국은행원화국제결제망(BOK-WireInt)은 한은이 구축한 첫 24시간 결제망이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에 오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가동된다.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금융기관이 아니라 해외원화업무취급기관(RFI-K)에 계좌를 개설하는 것만으로 원화를 결제할 수 있다. RFI-K가 국내 외국환은행에 개설한 통합원화계좌를 거쳐 한은 결제망에서 최종 결제가 이뤄지는 구조다.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면서 한국 금융회사의 영업시간에 맞춰 원화 결제를 처리해야 했다. 한국과 시차가 큰 미국과 유럽 투자자는 자국의 야간이나 이른 아침에 결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결제망을 뒷받침하는 제도는 앞서 정비됐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6일 '외국 금융기관의 외국환업무에 관한 지침'과 '외국환거래규정' 개정안을 고시하고 해외원화업무와 RFI-K를 제도화했다. 기존 해외외국환업무취급기관(RFI) 가운데 원화 업무를 하려는 기관은 재경부에 따로 등록해야 한다. 등록을 마친 기관은 해외에서 비거주자를 상대로 원화 지급·수령과 예금 업무를 할 수 있고 거래 내역은 매월 한은에 보고해야 한다. 비거주자 사이의 원화 표시 자본거래는 신고 의무가 면제되지만 국내 부동산 거래는 제외된다.



이번 결제망은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원화 국제화 로드맵'의 핵심 과제다. 정부는 지난 7월6일 원/달러 외환시장을 월요일 오전 6시부터 토요일 오전 6시까지 이어지는 무중단 체제로 전환했다. 외환시장 거래시간은 2024년 7월1일 오전 9시~다음 날 새벽 2시로 연장된 데 이어 2년 만에 다시 늘어났다.

로드맵은 인프라와 제도 개선, 원화거래 수요 확충, 원화 유동성 공급 확대, 다층적 리스크 관리체계 구축 등 네 가지 축으로 짜였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9일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한 외환·자본시장 종합 로드맵으로 8대 분야 39개 과제를 제시했다.

원화의 역외 결제 방식은 MSCI가 한국 증시의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유보하면서 반복해 지적한 대목이다. MSCI는 지난 6월23일(현지시각) 공개한 2026년 연례 시장 분류 결과에서 한국 증시를 선진국 지수 관찰대상국에 올리지 않았다. 원화가 역외에서 실물 인도 없이 차액결제선물환(NDF) 위주로 거래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한은은 지난 7월21일 결제망 명칭을 확정하면서 이 결제망이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야간 시간대 원화 유동성 확보는 과제로 남았다. 정부는 RFI-K가 결제에 필요한 원화를 국내 은행에서 한도 제한 없이 빌릴 수 있도록 했다. 한은은 "상시 모니터링으로 결제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제도와 시스템을 개선하고 참가기관을 늘려 지급결제 인프라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