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PV7 카고-패신저 /사진=기아


상용 전기 밴이 단순 화물 운송용 '짐차'의 틀을 벗고 이동형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화물 적재와 주행거리 중심의 경쟁을 넘어 차체를 모듈화하고 소프트웨어로 차량을 관리하며, 남는 배터리까지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차체 구조의 유연성 덕분에 가능해졌다. 내연기관 밴은 구동계와 차체 구조에 따른 공간 설계의 제약이 있다. 반면 최근 등장한 전용 플랫폼 기반 전기 밴은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낮고 평탄한 바닥 구조를 바탕으로 다양한 구성을 구현할 수 있다.



최근 기아가 공개한 대형 목적기반모빌리티(PBV) 'PV7'이 대표적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S를 기반으로 개발된 이 차량은 플랫 플로어와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을 바탕으로 화물용과 승객용 등 다양한 차체 구성을 구현할 수 있다. 기아는 PV7을 화물용인 카고(Cargo)와 승객용 패신저(Passenger) 두 가지 형태로 선보였으며, 향후 다양한 파생·컨버전 모델로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사진=기아


상용차 시장에서 기업 고객에게 총소유비용(TCO)은 중요한 구매·운영 판단 기준이다. 차량 가격 외에도 연료비, 정비비, 운행 효율, 가동률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하드웨어 성능 향상 외에도 플릿 관리와 연결 서비스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출시된 전기 밴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서 지속적으로 차량 기능을 업데이트하고 차량 데이터를 다양한 서비스와 연결하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축적된 주행·배터리·진단 데이터는 플릿 관리 시스템과 연계돼 운행 경로 최적화와 예방 정비 등에 활용된다. 차량이 고장으로 멈춰 서는 다운타임(운행 불가 시간)을 줄이는 것이 곧 기업의 물류 효율과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기아 '플레오스 커넥트'와 '플레오스 플릿'도 이런 트렌드를 따라간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무선(OTA)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 기능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역할을 하며, 플레오스 플릿은 법인차의 운행과 상태 등을 관리하는 플릿 관리 솔루션이다.
르노그룹의 플렉시스 /사진=르노그룹


유럽에서는 르노그룹이 전기 상용 밴 전용 플랫폼을 앞세운다. 당초 르노그룹, 볼보그룹, CMA CGM이 함께 추진했던 플렉시스(Flexis)는 지난 6월 르노그룹이 볼보그룹과 CMA CGM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르노그룹의 100% 자회사가 됐다. 플렉시스가 개발한 차세대 전기 밴 플랫폼은 스케이트보드 구조에 800V 전기 파워트레인과 SDV 아키텍처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플렉시스는 물류 사업자의 전체 사용 비용(global cost of usage)을 최대 30%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동형 에너지 허브로의 확장도 특징이다. 전기 상용차는 운행 특성과 배터리 용량에 따라 충전 인프라 및 전력 관리와의 연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배송이 끝난 야간이나 유휴 시간대에 전력망과 차량을 연결해 에너지를 주고받는 V2G(Vehicle-to-Grid) 및 V2X 기술도 관련 시장에서 개발·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다.

폭스바겐은 양방향 충전을 활용한 에너지 사업으로, 포드는 상용 플릿의 충전 관리와 에너지 최적화 솔루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낮에는 도심 속 물류를 책임지고 밤에는 에너지를 저장·공급하는 분산형 에너지 저장 장치(ESS) 역할을 수행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전기 밴은 지상고가 낮고 유연한 설계 등 장점이 많아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차량을 SDV 기반으로 전환하면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가능해 트렌드 전환에 큰 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