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대중문화평론가



'소금 언덕들 너머로 그였네/순금으로 지은 집에 대해 아는 그/빨강 산봉우리들 위 빨강 연기를 발견한 그'

8일(현지시간) 발표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캐나다 작가 앤 카슨의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 일부다. 운문의 리듬을 소설에 차용해 '시로 쓴 소설'이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상처는 스스로 빛을 낸다고/외과의사들은 말한다'

이번엔 카슨의 또 다른 운문 소설인 '남편의 아름다움'의 일부.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라는 부제처럼, 탱고의 스텝만큼이나 리드미컬한 운율이 검은 활자를 춤추게 한다는 뜻이리라. 카슨은 실제로 음악가들과도 가까웠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멤버 루 리드, 그리고 리드의 부인이자 전설적 실험음악가인 로리 앤더슨과 교류하며 시와 음악을 나눴다.

기실 문학은 뿌리부터 음악과 한패였다. 영화 '오디세이'의 서막을 다름 아닌 음유시인(실제 유명 래퍼인 트래비스 스콧이 연기한)이 열지 않던가. 종이도, 인쇄도 없던 시절에 이야기는 노래로 이어지고 귀로 계승됐다. 2016년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더니 2017년에는 재즈 보컬 스테이시 켄트의 작사가로도 알려진 가즈오 이시구로가 같은 영예를 가져갔다. 20세기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대중음악이 시, 소설, 희곡과 대등한 지위로 올라선 지 100년이 지났으니 앞으로는 음악가나 음악적 문학가가 문학상을 받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 본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도 음악과 인연이 깊다. 2007년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엔 직접 작사, 작곡, 가창을 한 10곡을 CD에 담아 첨부했던 그다. 아마추어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 작가인 한강의 눈물샘을 터뜨린 노래가 있다. 악뮤의 발라드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2019년)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의 초고를 쓰고 택시 안에서 우연히 이 노랠 듣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제목의 펀치감부터 남다른데 특히 다음과 같은 마지막 구절의 여운은 범상치 않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열린 악뮤 콘서트 '소문의 낙원'에 다녀왔다. 지난해 8월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연 중극장 콘서트 이후 무대와 객석 규모를 확 키웠다. 장대한 스크린과 원형 돌출 무대에 구현해 낸 환상 속 낙원의 정경은 초현실적이었다. 멤버와 연주자들이 돌출 무대 위로 자동차를 타고 돌며 노래하고, 이를 손에 든 카메라로 찍어 스크린에 투사하는 식의 볼거리로 눈이 즐거웠다.

하지만 더 즐거웠던 건 귀다. 현란한 타악기를 동반한 밴드에 관악단까지 합세해 뿜어내는 세밀하며 압도적인 소리는 악뮤 남매의 절창과 어우러져 '라이브 콘서트'의 본령이 뭐였는지를 숏폼 과잉, 비주얼 독재의 시대에 보여, 아니, 들려주고 증명했다.

콘서트의 여운은 플레이리스트로 남았다. 공연 곡 목록, 즉 셋리스트를 음원 플랫폼에 담아 스트리밍하며 그들 노래의 문학성에 새삼 다시 주목한다. 올해 4월 낸 4집 '개화'는 이번 콘서트의 핵심 레퍼토리이자 악뮤식 아포리즘의 정점이다. 쉬운 단어, 편안한 말들로 끼워 맞춘 퍼즐이 어느새 웃음과 눈물의 탑이 돼 청자의 맘에 그늘을 드리우는 소박하고 거대한 모놀리스다.

'못된 사람이 어딨죠/그러기만 한 사람 어딨죠'('옳은 사람') 하는 순진한 평화주의도, '밤이 깊었고 난민들이 오네/누울 곳을 위하여/떠나온 우리는 누구 하나/쫓아낼 명분이 없지'('난민들의 축제')의 박애주의도 난해한 철학책을 이기는 소박하나 통렬한 뼈 아픔을 던진다.

'두 마리의 벌레를 내고 버스를 탔지 (중략) 잘그락대는 나의 영혼'('벌레를 내고')이라 읊는 호접몽 비슷하게 나른한 우화는 어떤가. '봄 봄 모두 새롭게 태어나면/저 꽃들도 다시 시작하려나/보려고들 삼삼오오 모여드는 게/우린 다 비슷하게 피어났어라'('봄 색깔')와 합쳐서 노를 저어보면 만물일체나 제물론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이 상상 속 낙원의 중심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는 물론 개인적 치유도 자리한다. '커다란 지도 그린 바짓가랑이 (중략) 오 그건 외로운 나의 눈물이었지'('얼룩')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건 말야/사실 불가능하단다/저마다의 정원을 가꾸자'('우아한 아침 식사')와 같은 예쁜 체념마저,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아름다운 마음이야/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중략) 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의 적극적, 실천적 포용으로 그 잠언록을 확장한다.

그러니 올해 노벨문학상, 아니, '내 맘대로 노랠문학상' 수상자로 악뮤를 선정해 여기 발표한다. 11개의 노래, 37분 분량의 음악이 던지는 정서적 반향은 11개 챕터로 구성된 370페이지짜리 산문 이상이니까. 예언컨대 이는 필시 오래 갈 노래다. 종이와 인쇄와 스크린과 인공지능이 울창한 콘텐츠 밀림의 시대에도. 이 말들은 꽤 오래 이어지고 계승될 것이다.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열린 악뮤의 콘서트 '소문의 낙원' 중 11일 공연 장면. 악뮤의 전국 순회공연은 연말까지 강릉, 대구, 대전, 부산, 광주로 이어진다./사진=영감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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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대중문화평론가 전 동아일보, 헤럴드경제 기자.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YTN 시청자위원. 저서 '예술기: 예술과 기술을 이야기하는 8인의 유니버스', '망작들 3: 당신이 음반을 낼 수 없는 이유',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총괄 기획 및 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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