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용산의 한 영화관에 표시되는 ‘암살자(들)’ 홍보 포스터./뉴스1


"이 감독이 왜 이렇게 엉터리 영화를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으려고 했는지를 직접 불러서 물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난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이 영화 '암살자(들)'의 허진호 감독을 증인으로 부르자며 한 말이다. 그러나 이재정 위원장이 선을 그으면서 허 감독의 증인 채택은 없던 일이 됐다. 김 의원은 12일 국감에서도 "제가 두 번 보고 똑같이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이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의 배후로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자도 두 번째 관람을 위해 지난 주말 다시 극장을 찾았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서던 한 관객은 일행에게 "생각보다 별게 없는데?"라고 말했다. 기자의 감상도 다르지 않았다. 아쉬움은 정치적 방향성보다 만듦새에 있었다. 사건을 쫓던 형사와 기자의 이야기는 기자들의 자유언론 운동으로 이어진다. 허 감독은 외압에 맞선 이들의 신념을 그리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의 미스터리와 언론인들의 결단을 잇는 고리는 약했다. 일본 고전 영화 '라쇼몽'처럼 하나의 사건을 엇갈린 시선으로 엮어내는 힘도 부족했다.

이런 아쉬움은 객석과 평단이 따지면 될 일이다. 의원도 관객으로서 영화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해석을 근거로 감독을 증인석에 세워 추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1947년 미국 하원 반미활동위원회 활동은 할리우드에 후유증을 남겼다. 위원회는 영화인들을 증인석에 세웠다. '공산당원이냐'는 질문에 답을 거부한 10명은 의회모독죄로 실형을 살았다. 블랙리스트는 수많은 영화인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돌턴 트럼보는 '로마의 휴일'을 쓰고도 남의 이름을 빌려야 했다. 위원회에 협조한 이도 있었다. '에덴의 동쪽'을 만든 엘리아 카잔 감독은 1952년 옛 동료 8명의 이름을 댔다. 카잔 감독의 행보를 놓고 영화계는 둘로 갈라졌다.



권력이 예술에 간섭하면 창작의 자유는 힘을 잃는다. 중국 C컬처와 한국 K컬처의 차이다. "왜 그런 영화를 만드셨어요?" 그건 관객이 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