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6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협약식에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앞줄 왼쪽 여덟 번째)과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 11개 삼성 계열사 대표 및 주요 협력회사 대표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삼성전자


대기업들의 상생협력이 협력사의 경영 안정을 돕는 수준에서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금 지원을 넘어 연구개발과 신기술 실증을 지원해 공급망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은 협력사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시설투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신기술 개발에 필요한 정보와 시설을 제공하고, 연구개발 실패에 따른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공정 효율 개선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협력사의 사업 안정성은 공급망 안정과 제조 경쟁력에 직결된다. 자금력이 부족한 2·3차 협력사가 경영난으로 생산을 중단하면 부품 수급 차질이 상위 협력사를 거쳐 대기업까지 번질 수 있다. 첨단산업에서는 부품의 작은 품질 문제도 생산 수율 저하와 납기 지연으로 이어진다. AI 확산으로 제조공정이 복잡해지고 신제품 개발 주기도 짧아지면서 협력사의 기술 역량을 높이는 일이 공급망 관리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그룹은 총 3조5000억원 규모의 상생펀드와 ESG 펀드를 통해 협력사의 시설투자와 기술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기술개발을 돕기 위해 '패턴 웨이퍼' 제공도 확대할 계획이다. 패턴 웨이퍼는 회로가 형성된 웨이퍼로, 협력사가 개발한 장비의 성능을 시험하고 개선하는 데 활용된다. 그동안 공정 보안 문제로 제공 물량과 공정 범위를 제한했지만, 평택 5공장(P5)에 국산 장비를 시범 도입해 국내 업체들이 첨단 공정 적용 경험을 쌓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SK그룹에서는 SK하이닉스의 기술·금융 지원이 눈에 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9일 정부와 한국무역보험공사, 시중은행 등과 함께 2조원 규모의 협력사 금융 지원을 위한 '수출공급망 강화보증'을 출범시켰다. 협력사의 초기 연구개발 비용을 최대 50%까지 선지원하고, 개발에 실패하더라도 기술적 기여도를 인정해 정산하는 'R&D 도전 보상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지방자치단체와 총 8700억원을 투입해 협력사의 신기술과 제품을 실제 생산환경에서 실증할 수 있는 '트리니티 팹'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구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동반성장펀드 등 금융 지원과 함께 전기차·자율주행·로봇 등 미래 사업 분야에서 협력사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관련 기술 확보를 지원하고 AI·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한다. 현대모비스는 로봇 사업 확대에 맞춰 첨단 부품 기술을 보유한 협력사를 육성하고 있으며, 현대케피코는 특허 무상 제공과 동반성장펀드 금리 개선 등을 통해 기술 경쟁력 확보를 돕고 있다.

LG그룹은 1차 협력사에 집중됐던 상생 지원을 2차 이하 협력사로 확대하고 있다. 약 90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 가운데 10% 이상을 2차 이하 협력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LG전자는 2019년부터 250곳 이상의 협력사에 스마트공장 구축 관련 기술과 자금을 지원해 왔다. LG디스플레이는 협력사와 공동 연구개발 및 특허 출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LG화학은 연구시설을 활용한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협력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기업의 상생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지원 분야가 더욱 다양해지고 1차를 넘어 2·3차 협력사 지원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