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로봇을 앞세운 국내 제조업의 자동화는 세계 상위권이지만 그 성과는 산업 현장에 고르게 퍼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이 생산공정에 로봇과 인공지능(AI)을 확대하는 동안 중소 제조기업은 장비 구매와 전문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청과 협력사의 생산능력 차이가 커지면 공급망 전체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 전문가는 자동화 설비보다 데이터를 활용할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지난 9월 발표한 '세계 로봇 보고서 2026'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 대수는 약 3만대로 세계 4위였다. 주요 수요처는 전자·자동차 산업 등으로,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공장 중심으로 로봇이 보급된 것이다.



생산 규모와 공정이 다른 중소 협력사에는 대기업의 설비와 운영체계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인력 고령화도 부담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통계에서 중소기업의 50세 이상 비중은 대기업보다 높았다. 숙련자의 경험을 살리면서 반복 작업을 줄일 기술이 필요하지만 이를 운영할 전문인력마저 부족하다.

비용 부담도 크다. 중기부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평균 도입비용은 7억5000만원이었다. 도입 이후엔 유지보수와 운영비도 감당해야 하지만 중소기업 상당수는 전담 조직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원청과 협력사가 함께 푸는 시도도 나온다. 산업통상부와 해양수산부가 지난 12일 확대 개편해 출범시킨 '조선 M.AX 얼라이언스'에서 HD현대삼호와 대아산업은 블록 조립 공정의 AI 전환(AX) 기술을 검증하고 다른 협력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대기업이 축적한 제조 노하우를 현장에 전수하는 움직임도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거래 관계와 무관하게 중소·중견기업의 스마트공장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제조 전문가가 현장을 찾아 공정의 문제를 진단하고 품질관리와 인력 교육까지 돕는다. 삼성전자가 중소기업중앙회 자료를 바탕으로 공개한 지원사업 성과는 생산성 46% 향상, 불량률 54% 개선이다. 올해는 제조 AI를 더한 '스마트공장 4.0'으로 지원 범위를 넓혔다.

LG전자와 포스코도 중소기업의 공정 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LG전자 냉장고 부품 협력사는 AI 비전 검사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 현황 관리시간을 75% 줄였다. 포스코 지원을 받은 선박부품업체 대천은 창고관리 자동화로 출하시간을 23% 단축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영세기업은 수작업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며 "생산품목과 공정, 기업 규모에 따라 자동화 투자의 수익성이 다른 만큼 중소기업별로 지원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설비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진은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구축 후 클라우드 사용료·유지보수비 지원과 현장 교육 강화를 제안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개별 기업마다 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운영과 고도화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중심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만큼 지역·업종 단위로 클라우드와 데이터를 공동 활용해야 한다"며 "데이터를 쌓고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다음 자동화 설비와 피지컬 AI를 도입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