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3일 경기도 수원시 선영에서 진행된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6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삼성가와 주요 경영진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이 선대회장의 발자취 역시 재조명되는 가운데 그의 혁신 DNA가 오늘날 삼성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 이 선대회장의 추도식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가족 선영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이 선대회장의 기일은 오는 25일이지만 올해는 일요일인 점을 고려해 이틀 앞당겨 진행됐다.



추도식은 별도의 외부 공개 행사 없이 가족과 주요 경영진이 고인을 기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오전 8시40분쯤 아랍에미리트(UAE) 출장에서 귀국하자 마자 선영을 찾았다.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과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 외에도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 50여명도 추도식에서 고인을 기렸다.

이 선대회장의 6주기를 맞아 그가 걸어온 행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성장을 이끌고 삼성을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문화유산 보존과 예술 후원에도 힘쓰며 대한민국이 기술·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다.

대표적인 업적은 반도체 산업 육성이다. 1974년 자금난에 빠진 한국반도체에 개인 재산을 투자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3년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진출 이후에는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고 다음 해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성공의 배경으로는 과감한 선행 투자 전략이 꼽힌다. 1984년 경쟁사들이 4인치 웨이퍼 생산라인을 확대할 때 삼성은 6인치 웨이퍼로 전환했고, 1987년 반도체 불황에도 신규 생산라인을 건설했다. 이후에도 차세대 기술 개발과 생산능력 확충을 이어가며 후발주자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경쟁력의 기반을 마련했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로봇 등 첨단기술의 성장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1990년대에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면 창조적인 일 핵심이 경쟁력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그의 통찰은 오늘날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 첨단산업의 발전과 맞닿아 있다.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또 다른 원동력은 1993년 발표한 '신경영 선언'이다. 이 선대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메시지를 통해 품질과 조직문화 전반의 혁신을 주문했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약 500억원 규모의 불량 휴대전화 등을 폐기한 화형식은 품질경영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재 육성에도 힘썼다. 자본과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이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지역전문가 제도 등을 도입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다. 직원들이 해외에서 장기간 생활하며 현지 언어와 문화, 시장과 생활방식을 익히도록 했으며 급여와 교육비·체류비 등은 회사 차원에서 지원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남다른 발자취를 남겼다. 이 선대회장은 우리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 힘을 실어 왔다. 그의 철학을 계승한 유족들은 2021년 4월 이 선대회장이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기증품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김환기·박수근·이중섭 등 국내 주요 작가와 모네·피카소 등 해외 거장의 작품이 포함됐다.

KH 컬렉션은 국내 순회전에서 누적 관람객 350만명을 돌파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을 시작으로 해외 순회전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시카고미술관을 거쳐 지난 1일부터는 현재 영국박물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영국박물관이 대규모 한국 미술 특별전을 개최한 것은 1984년 이후 42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