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의 새벽 예불이 보여주는 장엄함은 가톨릭의 그레고리안 챤트(무반주로 불리는 남성 성가)와 비견되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출신 유홍준(77)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자신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경북 청도 운문사의 새벽 예불에 대해 이렇게 찬사를 보냈다. 십수년 전 청도 방문 길에 운문사 새벽 예불을 보겠다고 나선 것은 순전히 이 글 때문이었다. 밤잠을 설치고 사하촌의 숙소를 빠져나와 지켜 본 운문사의 장중한 새벽 예불은 가슴속 깊은 울림을 만들어 냈다.
충남 예산 수덕사를 여러 번 찾은 것도 유 관장의 책을 읽고서였다. 자연스러운 흙길 대신 화려한 돌계단을 놓은 절집을 보며 유 관장은 "그 옛날의 수덕사는 완벽하게 망가져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대웅전 건물이 건재하는 한 나는 수덕사를 무한히 사랑한다"고 썼다. 그리고는 700년 전 고려시대에 세워진 이 목조 건물을 "가벼운 밑화장만 한 중년의 미인"에 빗댔다. 화려한 단청이 없는 말간 대웅전을 보며 참 적절한 비유라고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유 관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토리텔러다. 기행문학 형태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20권)는 1993년 첫 권 출간 이후 50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대중에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했고 유적 답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명성만큼이나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잊힐 만하면 불거지는 학술적 오류와 공직 윤리 부재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에서도 오류가 발견된다. 그는 "월맹의 호찌민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의 서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니, 이런 것을 그분 위대함의 보론으로 삼고 싶다"고 썼다.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탐독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호찌민 박물관이나 다산연구소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유 관장은 아직도 자신의 책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있다.
추사 김정희를 다룬 '완당편전'(2002년 출간)은 고문헌 및 추사 연구자들로부터 200여 개의 오류가 지적되며 거센 논란이 일었다. 기본적인 번역 및 한자 표기 등에서 오기가 적지 않았다. 그가 전문가들로부터 "대중 미술사학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학술적 엄밀성을 저버렸다"며 '얼치기'라는 비판을 받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학자가 아니라 단순 이야기꾼에 불과하다는 수군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 문화재청장으로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으나, 공직 윤리의 흠결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는 임기 중 경기 여주 효종대왕릉 목조 재실 앞마당에서 LPG로 숯불파티를 벌였다. 비판 여론에 대해 "제사를 지냈으면 그 자리에서 잿밥을 먹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더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 산불로 녹아버린 보물 479호 낙산사 동종을 복원하면서, 동종 내부의 '복원기'에 본인 이름을 음각해 넣었다는 것이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결국 터질 게 터졌다. 개인 소장품의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 '셀프 전시' 및 작품 세탁 의혹이다. 문제가 된 유묵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라는 뜻)'은 유 관장이 7년 전 땡처리 경매에 1만원에 나온 것을 5만원에 낙찰받은 작품이다. 유 관장은 이를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판단해 특별전에 추천했다. 국중박도 '한인(韓人) 박원근' 서명을 바탕으로 충북 보은 출신 애국지사 박원근이 쓴 글씨로 소개했다. 그러다 한 달여 만에 유묵이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내고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아들로 알려진 박중양의 글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 관장은 더욱이 박물관과 작성한 출품 동의서 및 인수증에서 자신의 이름과 사인 옆에 '대(代)' 자를 적었다. 이는 자기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인데, 대신해서 서명한다는 의미다. 유 관장은 이 유묵이 박중양의 글씨로 밝혀진 이후 박물관이 공식 사과했을 때도, 자신의 소장품이란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최고 국립박물관의 전시 목록에 오른 것만으로도 개인 소장품의 객관적 가치가 상승한다는 점에서 이는 작품 세탁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사퇴 압박에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며 버티기로 일관하던 유 관장은,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자 결국 21일 전격 사퇴했다. 그는 입장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내주신 깊은 신뢰와 우리 박물관 직원들이 쌓아 올린 가치가 저의 개인적인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사의를 밝혔지만, 씁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명성에 도취하여 공공 전시를 사유화하고 공적 신뢰를 무너뜨린 문화권력의 예견된 불명예 퇴진이다. 수많은 학예 연구자들이 땀 흘려 일궈낸 국중박의 공신력은 수장의 도덕 불감증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화려한 언변과 필력보다 학자로서의 정직함과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이 더 절실했다는 사실을 그 역시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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