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9일 광주 서구 벽진동 일대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를 둘러본 뒤 전력과 용수 확보가 늦어지더라도 공사를 먼저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사진=뉴시스


SK그룹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국내 투자에 이어 원전 분야에서도 국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사업 참여를 타진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정부와 글로벌 기업 간 협력 확대를 뒷받침하는 한편 국회와 경제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정부 주도의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공동 인수에 조 단위 자금을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대미투자펀드 가운데 최대 1200억달러(약 161조원)를 투입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 파워'에 합의했다.



정부는 이와 연계해 국내 기업들과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를 공동 인수한다는 구상이다. SK를 비롯해 두산에너빌리티·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 등 7~8곳이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전체 투자 규모는 최대 4조원 안팎이 거론된다. 기업들이 공동 인수에 참여할 경우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의 재무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한미 원전 협력도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SK그룹은 차세대 원전 분야에서도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약 3311억원)를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지난 1월에는 SK이노베이션이 보유 지분 일부를 한수원에 매각해 국내 공기업의 SMR 사업 참여 기반을 마련했다. 8월에는 테라파워와 해외 SMR 사업 공동 개발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국내 원전기업의 기자재 공급도 늘리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반도체와 AI 인프라를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향후 10년간 매년 100조원 이상, 총 21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투자액 가운데 1100조원은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에 투입한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캠퍼스에 각각 600조원, 1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릴 계획이다.



나머지 400조원은 정부 지역균형발전 전략의 핵심인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활용한다. 이는 광주 군공항 부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공장(팹)을 각각 2기씩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최 회장은 지난 9일 예정지를 직접 찾아 "용수와 전력이 늦는다고 하더라도 타이밍을 빨리 맞출 수만 있으면 먼저 공사에 들어가겠다"며 조기 착공 의지를 피력했다.

1000조원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쓰인다. SK그룹은 SK텔레콤을 중심으로 2035년까지 전국에 총 1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우선 5GW 규모를 여러 지역에 분산 구축하고 이후 사업 성과와 시장 수요 등을 고려해 10GW를 추가할 방침이다. 지역 간 AI 인프라 격차를 줄이고 국가 AI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은 정부의 경제외교를 뒷받침하는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해왔다. 올해 7월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해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 참석했다. 최 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투자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의장을 맡아 정부와 국내외 기업 간 협력 기반을 넓히는 데도 기여했다.

최 회장은 국회와 경제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맡고 있다. 지난 9월 출범한 국회 경제대도약위원회에서 조정식 국회의장과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출범 당시 대한상공회의소는 첨단산업 규제 혁신과 기업 성장 지원 등 경제계의 목소리를 국회에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