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대기업의 연말 인사 시계가 빨라졌다. 과거 한 해의 경영 성과를 평가하고 연말에 경영진과 조직을 일괄 정비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선제적이고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인사 시점을 앞당기는 모습이다.
재계에 따르면 한화와 HD현대 등 주요 그룹은 예년보다 앞서 인사를 단행하며 연말 인사의 포문을 열었다. 한화는 지난 8월 주요 경영진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이달 1일 임원 인사까지 마무리했다. HD현대도 이달 7일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며 사업 역량 강화에 나섰다.
삼성·SK·LG 등 주요 그룹 역시 연말 인사를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통상 11월 말부터 12월 중순 사이 집중됐던 인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경에는 글로벌 통상질서 재편과 지정학적 리스크,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기술 경쟁 등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관세와 공급망 변화에 따라 사업 전략을 수정해야 하고, 신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의사결정 속도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인사와 조직 개편을 앞당기면 새해 시작에 앞서 선제적으로 사업 전략을 마련해 실행할 수 있다. 과거처럼 한 해의 성과를 평가한 뒤 일괄적으로 연말에 조직을 정비하는 데 그치기보다 다음 해의 경영 목표와 실행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인사의 역할이 확대되는 셈이다.
인사 조기화는 기업의 조직 운영 방식이 달라지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의사결정 단계를 줄이고 사업별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는 '애자일 경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반도체 등 기술 변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사업 기회를 선점할 인재를 적기에 배치하고, 성과가 부진한 사업의 조직과 인력을 재편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정해진 인사철까지 기다리기보다 사업 전략에 맞춰 경영진과 조직을 유연하게 바꾸려는 수요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주요 그룹 인사에서는 경영진의 유임과 승진뿐 아니라 사업별 책임자 배치와 조직 개편 방향도 관심사다. SK그룹은 이르면 이달 말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유임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대대적인 쇄신보다는 경영 안정에 무게를 둘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까지 임원 평가를 마무리하고 11월 중하순을 전후해 인사를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과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사장)이 각각 겸직 중인 메모리사업부장과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을 별도로 선임할지가 주요 변수다. 핵심 사업의 전문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정비할지 주목된다.
LG그룹은 계열사별 사업보고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마친 뒤 11월 말 정기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주요 계열사 CEO 교체가 이뤄진 만큼 큰 폭의 인사보다는 경영 안정에 무게를 두면서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재 배치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영 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새 경영진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직접 수립하고 조직을 정비할 수 있도록 인사를 앞당기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인사 시점뿐 아니라 사업별 책임자 배치와 조직 운영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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