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언론 보도로 법무부의 '인공지능(AI) 리걸 테크 가이드라인' 초안이 알려졌다. 초안 제10조는 기업 안에서 판단형 AI 리걸 테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사내 변호사가 존재하고 그 관리·감독 아래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 한정했다. 제11조는 제공자에게 이용자의 자격을 확인할 의무를 지웠다. 법령과 판례를 기반으로 답변을 생성하는 국내 법률 AI가 대상이었고, 해외의 범용 AI는 사실상 제외됐다.
국내 기업만 규제하는 역차별이라는 지적과 함께, 사내 변호사가 없는 중소기업·공공기관이나 법무사·노무사 등 다른 전문직의 이용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결국 청와대와 정부는 10월 초 '신중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안은 멈췄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남아 있다. 법률 AI를 어떤 기준으로 규율할 것인가.
보도된 조항만 놓고 보면 구조는 분명하다. 초안에서 묻는 것은 전부 '사람의 자격'이다. 비변호사의 법률 업무를 금지하는 변호사법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변호사법은 제정 이래 사람을 겨냥해 왔다. 자격 없는 사무장이 사건을 맡고, 브로커가 사건을 가져오고 그 대가로 소개비나 알선 수수료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한 조문이다. 정운호 게이트의 브로커 사무장을 잡은 것도 이 법이다. 그러니 자격을 묻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AI는 사건을 알선하지도, 변호사 명의를 빌려 사건을 맡지도 않는다. 출처가 있는지, 검증 장치가 있는지, 분쟁 사안인지가 위험을 가르는데, 사람을 가려내던 잣대로는 그 어느 것도 재기 어렵다. 기준이 없는 자리에 가장 가까운 법을 가져다 쓴 결과다. 이재명 대통령은 4월 15일 규제합리화위원회 첫 회의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가야 한다"며 "첨단 산업 분야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법률 AI에 그 기준을 적용한다면, 먼저 다른 나라가 어떤 자로 재고 있는 지부터 봐야 한다.
일본은 '사안'으로 선을 그었다. 일본 정부는 7월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기준으로 AI 리걸 테크의 규칙 명확화에 착수했고, 법무성은 8월 21일 기업 법무와 관련한 AI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기준은 '사건성'이다. 분쟁이 현실화했거나 불가피한 사안만 일본 변호사법 제72조가 다루고, 그 전 단계의 계약 검토·리서치·컴플라이언스는 AI를 쓸 수 있게 문을 열었다. 10월 16일 해설 세미나에서는 "통상적인 법무팀 업무 수준이면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대신 제공자에게는 오남용 방지 체계와 변호사의 상담 유도 같은 책임을 지웠다.
영국은 '책임'으로 선을 그었다. 영국 사무변호사규제청(SRA)은 지난해 5월 AI 챗봇을 활용해 소액 채권 추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액 청구와 관련한 법원의 절차를 안내하는 AI 로펌 가필드로(Garfield.Law)를 처음 인가했다. 이용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대신, 단계마다 이용자 승인을 받을 것, 할루시네이션(허위 정보 생성)을 막기 위해 AI가 판례를 인용하지 못하게 할 것, 지정된 변호사가 모든 산출물에 최종 책임을 질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영국 법무부 사법담당 장관은 9월 기고에서 "AI의 경제적 이익은 가장 강력한 기술을 만든 나라가 아니라 기업이 AI를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나라에 돌아간다"며 법률 AI 성장 실험실 추진을 밝혔다.
두 나라의 길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용자의 자격이 아니라 사안의 성격과 서비스의 책임 구조로 위험을 가른다는 것, 그리고 자국 리걸 테크가 해외 서비스와 경쟁할 수 있는지를 규제 설계의 기준에 넣었다는 것이다. 우리 가이드라인이 다시 논의된다면 그 출발점은 국내 변호사법의 틀 안이 아니라 이 글로벌 스탠더드여야 한다. 법률 AI를 어디까지 열 것인지는 그 다음 문제다.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하고, 그 기준은 우리 안에서만 찾는 게 아니라 세계가 가는 방향과 맞추어야 한다.
정혜진 변호사는 동아일보 기자로 8년, 변호사로 8년을 일했다. 법무법인과 기업 법무실,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전담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리걸 테크 기업인 로앤컴퍼니에서 법무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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