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최불암이 29일 밤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지난해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방송에서 하차해 재활에 힘써왔지만, 끝내 시청자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범인을 쫓던 박 반장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양촌리를 지키던 김 회장이었다. 밥상 앞에서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오랜 세월 일상의 한편을 함께한 얼굴이기에 그 빈자리가 남다르다.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고인은 국립극단을 거쳐 1967년 TV 드라마에 진출했다. 20대에 '수양대군'의 노년 김종서를 맡았고, 40대에는 '제1공화국'에서 80대의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했다. 젊은 시절부터 노인 역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다. '영자의 전성시대''바람불어 좋은날' 등 영화에서도 관객을 만났고, 2018년에는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로 2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섰다. 67년의 연기 인생은 몇몇 대표작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폭넓었다.
그를 국민 배우로 만든 작품은 단연 '수사반장'과 '전원일기'였다. 18년간 방송된 '수사반장'의 박 반장은 범인을 쫓으면서도 사건 뒤에 놓인 사람의 사정을 살폈다. 22년간 이어진 '전원일기'의 김 회장은 가족과 이웃의 갈등 속에서 더불어 사는 도리를 보여줬다. 김혜자와의 부부 연기는 두 사람을 실제 부부로 여기는 시청자가 많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엄하게 꾸짖다가도 자식과 이웃의 형편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지는 모습에 우리네 아버지의 얼굴이 겹쳤다.
대중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도 특별했다. 1990년대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유머 '최불암 시리즈'가 널리 퍼졌다. 고개를 젖히며 내는 특유의 "파하" 하는 웃음은 성대모사의 단골 소재가 됐다. 근엄한 배역을 자주 맡았지만 대중에게는 함께 웃을 수 있는 배우였다. 14년간 진행한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전국의 평범한 이들을 만나 음식에 담긴 삶의 사연을 전했다. 드라마 속 인물로,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진행자로 그는 오랫동안 시청자의 일상에 함께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화면 밖에서도 이어졌다.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하는 이야기를 계기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의 현실에 눈을 돌린 그는 오랫동안 아동 후원에 힘을 보탰다.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했고, 소년 수형자들이 문화예술교육으로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일도 도왔다. 장례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는 데에는 이런 삶의 이력이 배어 있다.
대중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도 특별했다. 1990년대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유머 '최불암 시리즈'가 널리 퍼졌다. 고개를 젖히며 내는 특유의 "파하" 하는 웃음은 성대모사의 단골 소재가 됐다. 근엄한 배역을 자주 맡았지만 대중에게는 함께 웃을 수 있는 배우였다. 14년간 진행한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전국의 평범한 이들을 만나 음식에 담긴 삶의 사연을 전했다. 드라마 속 인물로,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진행자로 그는 오랫동안 시청자의 일상에 함께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화면 밖에서도 이어졌다.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하는 이야기를 계기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의 현실에 눈을 돌린 그는 오랫동안 아동 후원에 힘을 보탰다.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했고, 소년 수형자들이 문화예술교육으로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일도 도왔다. 장례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는 데에는 이런 삶의 이력이 배어 있다.
고인이 남긴 작품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정과 애환이 담겨 있다. 시청자는 그가 연기한 인물 속에서 자신과 이웃의 모습을 발견했고, 웃고 울며 그 삶을 이해했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극적인 장면이나 거창한 말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연기는 보여줬다.
한 배우를 떠나보내는 슬픔에는 그와 함께한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는 마음도 섞여 있다. 부모와 나란히 앉아 보던 드라마, 저녁밥을 먹으며 듣던 익숙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최불암은 그렇게 여러 세대의 기억을 이어줬다.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던 연기와 이웃을 돌보던 실천은 그의 작품과 함께 남았다. 우리가 그를 '국민 아버지'로 기억하는 이유다.
한 배우를 떠나보내는 슬픔에는 그와 함께한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는 마음도 섞여 있다. 부모와 나란히 앉아 보던 드라마, 저녁밥을 먹으며 듣던 익숙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최불암은 그렇게 여러 세대의 기억을 이어줬다.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던 연기와 이웃을 돌보던 실천은 그의 작품과 함께 남았다. 우리가 그를 '국민 아버지'로 기억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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