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독감(인플루엔자) 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9월14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보건소에서 관계자가 예방접종에 앞서 독감 백신을 점검하고 있다./뉴시스


"정부는 백신 조달업체를 선정할 때 가격뿐 아니라 공급 안정성도 함께 봐야 합니다." 최근 만난 국내 백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외국 제약사가 제때 공급하지 못한 백신 물량을 국내 업체가 대신 메우면서 수익 감소 부담까지 떠안은 상황을 두고 나온 지적이다. 국가예방접종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됐지만 부담은 국내 업체에 집중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9월 시작된 2026~2027 절기 독감 국가예방접종 사업에서는 공급 변수가 발생했다. 프랑스계 제약사 사노피는 조달계약을 통해 독감백신 225만 도즈를 공급하기로 했으나 이 중 50만 도즈의 초기 납품이 어려워졌다. 질병관리청은 해당 물량을 GC녹십자 제품으로 대체해 접종 일정에 맞췄다.

정부가 확보한 전체 물량과 접종 일정은 유지됐다. GC녹십자는 민간시장 공급 물량 일부를 국가예방접종용으로 전환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기대할 수 있는 판매 기회를 줄이고 국가 조달물량을 우선 공급한 것이다.

질병청은 납품기한 전 협의를 거쳐 물량을 조정한 만큼 사노피는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백신주 변경과 표준품 공급 지연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접종 일정 준수를 위해 선제적으로 물량을 조정했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례는 백신 조달 구조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올해 조달은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 순으로 물량을 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예산 절감에는 유리했지만 공급에 변수가 생기자 국내 업체의 생산 여력과 신속한 대응 능력이 안전판 역할을 했다. 국가예방접종 사업은 정해진 시기에 백신을 공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급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접종 일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역량 역시 조달 체계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평소에는 가격 경쟁력을 기준으로 공급자를 선정한다. 반면 예상치 못한 공백이 발생하면 국내 생산시설과 즉각적인 물량 전환 능력에 의존한다. 공급 차질은 외국사에서 발생했고 공백은 국내 업체가 메웠다. 국가예방접종 일정은 지켜졌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담의 무게는 고르게 나뉘지 않았다. 이번 독감백신 조달은 백신 주권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