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오른쪽 두번째)과 노조 관계자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허용 등의 내용이 포함된 '메가특구법' 제정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정부 여당이 제정을 준비 중인 초광역특구법(일명 메가특구법)의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조항과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28일 한국노총, 민노총과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실무협의를 벌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들어설 호남반도체 클러스터 등을 특구로 지정하고, 특구 내에서 주 52시간제 예외를 적용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기존 시행령을 고칠 수 없는지 논의하라"며 근로기준법상 제도 보완에 힘을 실으면서 노동 특례 도입의 동력이 크게 약화 됐다.

지난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초광역특구 내의 고소득·연구개발(R&D) 노동자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를 허용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면제)'과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와 동시에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선 노동 특례가 빠진 법안을 내놨다. 이 때문에 재계와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한 '양다리 걸치기'란 비판이 나왔다.



이후 이 대통령이 "경영계와 노동계의 생각이 심각한 대립을 할 만큼 크지 않다"며 기존 제도 보완을 노동부에 지시하면서 상황이 다시 달라졌다. 노동자의 동의, 사전 인가를 받는 경우 예외적으로 주 52시간 이상 근로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한 근로기준법의 특별연장근로제를 손보는 쪽으로 노동부가 방향을 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번 예외가 인정되면 다른 지역, 분야로 번질 것"이라며 노동계가 법 제정 철회 투쟁에 나선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반도체 업계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제도를 개선한다 해도 특별연장근로제의 한계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인가 기간, 재심사 기준이 다소 완화됐지만 특별연장근로의 경우 첫 3개월은 주 최대 64시간, 이후 3개월은 60시간까지만 근무가 허용된다. 국가간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분야에선 설계·제조·장비 구입 일정을 예측하기 어려워 사전 인가를 받기도 쉽지 않다. 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게다가 쟁점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다수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제도다. 미국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고정급여를 받는 전문직·관리직은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다. 일본도 고소득 전문직을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고 연간 휴일, 건강확보 의무만 지키도록 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보상 수준이 높은 전문 인력의 경우 자기책임 하에 업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것이 기업과 개인 양측에 이득이 되고, 보편적 상식에도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글로벌 순위가 바뀌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경직적 주 52시간제는 시대착오적이다. 사실상 경제성장을 홀로 견인하고 있는 반도체 분야에서조차 예외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노동계의 반발은 미래를 볼모로 삼는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 여당은 더 이상 큰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 어렵게 막대한 투자를 결정한 기업들과의 약속을 저버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