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한 소방관이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발생한 거리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교육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대학생, 노동조합, 교사 등이 참여하며 대규모 시위로 번지고 있다./AP=뉴시스


회사 후배 중에 30대 중반에 접어든 친구가 있었다. 벌써 수년 전의 일이니 그 친구가 30대 초반쯤이었을 때였다. 그는 월급에서 국민연금 보험료가 빠져나가고 회사가 퇴직연금을 쌓아주는데도 개인연금을 따로 한도까지 채워 넣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넣느냐고 물었다.

"일단 세액공제가 많이 되잖아요. 최대한 받아야죠. 그리고 나중에 노후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은퇴까지 한참 남은 후배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친구만큼 노후를 탄탄하게 준비하고 있는지 돌아봤다. 후배의 말에는 계산과 불안이 반씩 섞여 있었다. 세액공제는 계산섞인 말이었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은 불안이 묻은 말이었다. 그의 불안에는 근거가 있었다.

올 7월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은 1684조원으로 지난해 말(1458조원) 대비 15.50% 늘었다. 숫자만 보면 든든하다. 물론 7월 한 달간의 주가 급락에 180조원 넘게 줄었을 만큼 출렁임도 크다. 게다가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지는 해가 2048년, 연금 곳간이 비는 해가 2064년이다. 지난해 18년 만의 개혁으로 번 시간은 8년에 불과하다. 곳간이 빌 즈음 그 후배는 일흔을 넘긴다.

인구 감소는 훨씬 가팔라질 전망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80명은 여성 한 명이 평생 아이를 한 명도 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구를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2.1명이 필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하는 나이의 인구 100명이 떠받치는 노인은 2022년 24.4명에서 올해 31.3명이 됐고, 2072년엔 104.2명에 이른다. 기금이 바닥나면 그 몫은 그 해 일하는 세대의 보험료와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국민연금을 못믿겠다는 이들이 4명 중 1명을 웃돈다는 통계도 있다. 믿지 못하는 제도에 노후를 통째로 맡기기는 어렵다.

부담이 커지면 불만도 커진다. 지금의 프랑스가 딱 그렇다. 9월 시작된 고교생 시위는 이달 17일(현지 시간) 전국 55만명이 참가하는 집회로 커졌다. 현지 SNS(소셜미디어)에는 '니콜라가 낸다'(C'est Nicolas qui paie)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월급 명세서에서 세금과 보험료부터 떼이며 남의 노후를 먼저 챙기는 30대가 스스로를 비꼬는 말이다. 딱 내 후배 또래다.

우리나라는 안심할 수 있을까. 한국 노인의 소득빈곤율은 3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8%)의 두 배를 넘는다. 부모 세대가 자식을 키워줄 여력은 줄고, 국민연금만으론 자기 노후도 버겁다. 결국 각자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쿠션을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후배 같은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연금저축 가입자는 지난해 840만명으로 1년 새 10% 늘었다. 물론 쌓는 것과 잘 굴리는 것은 다르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상위 10%가 19.5%, 하위 10%가 0.5%였다. 2024년 금융이해력 조사에선 20대의 장기 재무목표 점수가 2년 전 48.0점에서 36.1점으로 하락했다.

정부도 8월 세제개편안에서 청년의 개인형퇴직연금(IRP) 세액공제율을 올리겠다고 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세금 혜택이 든든한 쿠션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 세액공제를 챙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상품에 얼마를 넣고, 어떻게 굴리고, 언제 어떻게 받을지를 알아야 쿠션이 제 역할을 한다. 고등학교에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이 생겼다지만 이미 사회에 나온 청년에겐 금융을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 회사와 금융사,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청년들이 스스로를 '니콜라'라고 느끼기 전에, '니콜라'라고 여기지 않도록 만들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 청년의 분노가 거리로 번지지 않게 막는 안전망은 의외로 그런 작은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금융은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디딤돌이자 버팀목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