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7년도 정부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공청회가 열렸다. 이 공청회를 시작으로 국회는 11월 한달 간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한다./뉴스1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총지출을 820조9000억 원으로 크게 늘려 잡은 내년도 예산안은 역대 최대 규모의 '슈퍼 확장예산'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 증가분을 활용하는 '미래대응기금' 신설 등 정부의 예산편성 기조를 최대한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나랏빚의 과도한 증가 등을 이유로 불필요한 예산을 100조 원 이상 삭감할 방침이라고 한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올해 본예산 대비 12.8%, 93조 원 증액됐다. 늘어난 법인세수 등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피지컬AI, AI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 등에 재정을 투입해 잠재성장률 상승과 성장과실 확산을 뒷받침한다는 게 팽창예산 편성의 이유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초과 세수를 활용해 162조 원의 미래대응기금을 만들어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한다. 기금 중에서는 104조4000억 원을 여유자금으로 남겨 운용하고, 45조4000억 원은 내년도 예산으로 지출할 계획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더 들어온 세수를 미래성장 동력에 투자하자는 데 반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부가 계획한 기금의 사용처가 이런 명목에 정확히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농어촌 주민들에게 월 15만 원씩 상품권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산 1조1000억 원, 청년들을 위한 문화예술패스 예산 8000억 원 등 지역경제 활성화, 문화사업 육성엔 도움이 될지언정 국가 경쟁력 강화에 크게 보탬이 된다고 보기 어려운 항목들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정부가 기금에서 지출하겠다고 밝힌 장·차관들의 관사 확보비용, 공공기관 직원 보너스 등은 성장동력 확보와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기금의 경우 회계연도가 시작된 후 사업비의 30% 범위 내에서 정부 재량으로 지출을 확대할 수 있어, 국회의 감시, 감독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내년도 국가채무가 100조 원 이상 늘어나는 걸 방치하면서, 막대한 기금을 떼어내 사용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재정난으로 교육투자 여력이 부족해진 데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프랑스와 같은 일을 미래에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유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나랏빚을 줄여둘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출을 과도하게 늘려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반도체 호황의 산물인 세수 특수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경제체제가 급격히 재편되는 시대에 한국에 운 좋게 찾아온 소중한 기회다. 산업구조를 첨단화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쪽으로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반드시 투입돼야 하는 이유다. 국회는 세수가 조금이라도 헤프게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밝힌 미래대응에서 벗어난 선심성 지출 항목을 낱낱이 찾아내 과감히 쳐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