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제1 야당 야샤르당의 가디 아이젠코트 대표가 지난달 27일 총선 직후 텔아비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뉴시스


가자지구·이란·헤즈볼라 등과의 전쟁 수렁에 빠진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도 교착상태에 빠졌다. 지난 10월 27일의 제26대 크네세트(120석으로 이뤄진 의회) 선거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하는 친네타냐후 진영이 53석, 반네타냐후 진영이 48석, 그리고 아랍계 정당들이 19석을 각각 얻으면서 어느 측도 연립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의석(61석 이상)을 확보하지 못하면서다.

사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는 1996~1999년, 2009~2021년, 2022년 12월 이후 등 지금까지 합계 19년 넘게 집권해온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운명이었다. 친네타냐후 진영은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27석으로 제1당)을 구심점으로 2개의 하레디(초정통파) 정당과 2개의 유대민족주의 정당으로 이뤄졌다. 하레디 정당으론 유대교토라연합(중·동유럽계 아슈케나짐, 7석)과 샤스(이베리아계 세파르딤과 중동계 미즈라힘, 6석)가 있다. 유대 종교법이자 삶의 규범체계인 '할라카' 수호와 하레디 이권 보호가 최우선인 이익 정당이다. 문제는 극단적인 반팔레스타인 성향의 오츠마 예후디트(7석)와 종교시온주의당(6석)이다. 이들은 유대민족주의와 유대우월주의를 내세우면서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7일 총선 직후 예루살렘의 리쿠드당 선거본부에서 출구조사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뉴스1


종교시온주의당의 베잘렐 스모트리치 대표는 자신이 거주하는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의 확장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 국가수립(2국가 해법)에 반대한다. 심지어 2023년 재무부 장관으로서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 팔레스타인 민족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치정부 해체와 서안지구 완전 합병을 주장했다. 오츠마 예후디트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대표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표적살해 제안 등 증오 발언과 폭력 선동 등을 해 온 것으로 지적된다. 2022년부터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냈으나 지난 1월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에 불만을 품고 사임했을 정도다. 네타냐후가 아랍계 정당과 손잡기 어려운 이유의 하나다. 손을 잡더라도 유대민족주의 정당들의 연정 이탈 가능성이 커서 어차피 과반수 확보는 전망이다. 반네타냐후 정당을 회유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중요한 건 반네타냐후 연합을 이끌고 있는 아이젠코트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연정 구성 시 추진할 정책이다. 현지 신문인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국가조사위원회의 설립, 전 이스라엘인에 대한 의무 병역 도입, 사법 개혁 법안 폐지 등이 핵심이다. 국가조사위원회는 2023년 9월 7일 하마스 기습 당시 정보 실패의 경위와 책임자를 밝히는 게 목표다. 가자지구 관련 정보 책임부서인 신베트는 물론, 당시 총리인 네타냐후의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위원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 이스라엘인 의무복무는 1948년 건국 이래 토라(유대율법) 연구를 이유로 병역면제를 받아온 하레디에 대한 사회적 불만에 따른 것이다. 하레디 정당은 현재는 네타냐후를 지지한다.

아이젠코트가 폐지를 공언한 사법개혁안은 사법부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행정부와·입법부 영향력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네타냐후 정부가 2023년부터 추진해왔다. 이스라엘 검찰은 2019년 11월 네타냐후를 뇌물수수·사기·배임 등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 비판론자들은 네타냐후가 정권을 잃을 경우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장기간 감옥에 가게 될까 봐 이러한 사법 리스크를 무력화하려고 사법개혁을 밀어붙인 것으로 본다. 아이젠코트가 제시한 정책 변화는 네타냐후의 정치적 재기를 막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스라엘 2026년 10월 27일 총선결과.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아아젠코트는 이와 함께 자신이 추진하는 차기 연립정부에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데 필요한 '연정 구성의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고 현지 일간지 타임오브 이스라엘이 보도했다. 4가지 원칙은 이스라엘을 유대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유롭고 평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이스라엘 독립선언문의 가치를 준수하며, 모든 이스라엘 시민에 대한 의무적인 군사·국가·민간 복무 시행, 그리고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인정하고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군사력·통치력을 파괴할 의무를 인정할 것 등이다. 이스라엘의 가치를 따르면 아랍계 정당과도 연정을 하겠다는 의미다. 아랍계 정당으로선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문제는 아랍인 정당과의 협력이 유대인 유권자 사이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최대부수의 중도계 일간지 예디오트 아로노스의 영어판 웹사이트인 Ynets는 지난달 31일 반네타냐후라는 기치로 뭉친 친아이젠코트 연합에서도 팔레스타인 정당과의 연정에 공개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힌 곳은 민주당 한 군데뿐이라고 지적했다. 친아이젠코트 연합이 아랍계 정당인 라암과만 연합하고, 3개 정당으로 구성된 아랍계 정당연합인 '조인트 리스트'로부터는 소극적 지지를 받는 방식으로 소수 정부를 구성하는 방법도 있다.

이스라엘의 정치 일정상 새 의회는 11월 10일에 개원하지만, 연정 구성은 12월 중하순까지 걸릴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 연정이 불발되면 내년 1월 다시 선거를 치를 가능성도 있다. 앞서 2019년 4월과 9월에 연정 구성 실패로 총선을 다시 치른 적이 있다. 이스라엘 정치는 그야말로 '시계제로'의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