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고 가문인 진골 출신으로 출가 전엔 재상으로 부름을 받은 적도 있는 자장율사(590~658경)가 당나라에서 법을 구하고 있을 때 문수보살로부터 가사 한벌과 부처의 바리때 하나, 부처의 정골사리 한조각을 받았다.
“이것은 석가세존이 쓰시던 도구이니 그대가 가지시오. 그대의 나라 동북방 명주 땅에 오대산이 있는데 그곳에 1만 문수보살이 상주하니 그곳에서 나의 진신을 친견할 수 있을 것이오.”
자장율사가 부처의 정골사리 모시고 세운 절집
귀국한 자장율사는 국토를 순례하다가 중국의 오대산과 닮은 이곳을 발견했다. 자장율사는 부처의 정골사리를 중대 적멸보궁에 모시고, 북대 남대 서대 동대에 각각 오류성중(五類聖衆)이 상주한다는 믿음으로 기도를 했다. 중국의 오대산 신앙을 이 땅에 도입한 자장율사가 지은 작은 띳집은 나중에 월정사가 됐고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도 위풍당당한 사세를 유지해 왔다.
이토록 유서 깊은 절집이건만 한국전쟁 때 입은 피해는 참혹할 정도였으니, 국보급 건축물은 모두 불타버리고 범종도 녹아 영원히 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돌로 만든 것들은 남았는데 바로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과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이다.
구층석탑의 팔각은 불교의 실천수행에 기본이 되는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고려 초기인 10세기쯤에 제작된 이 탑은 연꽃무늬로 장식한 이층 기단,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그리고 완벽한 형태의 상륜부 등에서 세련된 조형미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으로 꼽힌다.
성보박물관에서 상원사 중창권선문, 팔각구층석탑 사리구, 상원사 문수동자상 복장유물 등을 둘러보고 월정사를 벗어나면 눈 덮인 산길은 얼어붙은 맑은 계류를 끼고 상원사로 이어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8km. 승용차로 통행이 가능하다. 상원사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오대산 신앙의 중심지로 꼽히는 상원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동종(국보 제36호)으로 유명하다. 725년(신라 성덕왕 24년)에 조성된 동종 표면엔 하늘을 비상하며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는데, 흘러가는 구름과 펄럭이는 천자락의 표현이 생동감이 넘친다. 겨울 오대산을 깨우는 종소리 또한 청아하기 이를 데 없다.
상원사를 찾는 참배객들이 가장 정성을 들이는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은 상원사를 유명하게 만든 나라의 보물로서 세조(재위 1455~1468년)와 인연이 깊다. 전신에 종창이 생기는 괴질을 앓아 온 나라 물 좋다는 데는 다 찾아다니던 세조가 오대산에 이르러 월정사에서 참배하고 상원사로 가던 중 ‘관대거리’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하다 동자승으로 변한 문수보살을 만난 것. 문수동자상은 그때 세조가 본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조각된 것이라고 전한다.
문수전(文殊殿) 계단 아래쪽엔 한쌍의 고양이 석상이 보인다. 이는 세조와 인연이 있다. 상원사를 찾은 세조가 법당으로 들어서려 할 때 어디선가 고양이 한마리가 나타나 세조의 옷자락을 물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법당 안에 자객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건진 세조는 고양이 앞으로 전답을 주었는데, 이를 묘답(猫畓, 고양이논), 묘전(猫田, 고양이밭)이라 했다. 또 이 일을 기리기 위해 법당 앞에도 고양이 석상을 세운 것이다.
적멸보궁부터는 본격 산행 장비 갖춰야 안전
상원사부터 시작하는 산길은 넓고 완만하다. 사자암(중대)을 지나면서 조금 가팔라지던 산길은 적멸보궁에 이르러 잠시 부드러워진다. 비로봉 정기가 동으로 뻗어 내린 곳에 있는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정골사리가 묻혀 있어 우리나라 불교의 제일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바로 영축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에 든다.
적멸보궁엔 불상이 없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니 물체로 이루어진 불상을 굳이 둘 필요가 없다는 뜻이리라. “진리 외에 하찮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마라. 만들어진 것은 모두 사라지게 마련이니.” 부처가 열반에 들며 중생에게 설파한 마지막 가르침이다.
적멸보궁을 지나면서부터는 적설량이 점차 많아진다. 적멸보궁까지만 해도 한겨울에도 불자들의 발길이 잦아 늘 러셀이 되어 있다. 산길은 오를수록 조금씩 가팔라진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정상 능선에 닿는다.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1563m)은 월정사와 상원사 등의 천년고찰을 끼고 있는 불가(佛家)의 명산이다. 진고개를 지나는 6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가 연꽃 형상을 이룬 월정사지구와 동쪽의 노인봉(1338m)을 중심으로 하는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오대산의 여러 코스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상원사~중대암~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상원사 원점 회귀 코스가 5시간 정도 걸린다. 만약 산행시간이 넉넉하지 않거나 기후 등 여건이 좋지 않다면 비로봉까지만 갔다가 되짚어 내려오는 게 좋다. 상원사~중대암~적멸보궁~비로봉~적멸보궁~중대암~상원사 회귀코스는 3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이는 겨울에 눈이 발목 정도까지만 쌓였을 때 시간이고, 만약 적설량이 발목을 넘는다면 산행시간을 조금 더 넉넉하게 계산하는 게 좋다. 오대산은 바위가 많지 않은 육산이기 때문에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엔 아이젠을 꼭 갖춰야 한다. 또 눈이 많이 쌓여 있지 않더라도 정상 능선엔 바람이 거세게 부니 꼭 방풍 의류를 갖춰야 한다. 월정사 문화재 관람료 어른 2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400원. 국립공원 주차료 승용차 4000원.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진부 나들목→6번 국도(월정사 방향)→8km→월정사 입구 삼거리(좌회전)→4km→월정사→8km→상원사 <수도권 기준 3시간 소요>
●별미 오대산 일대에서 나는 깨끗한 산채를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차리는 산채백반은 깊은 양념을 더해 겨울 입맛을 북돋운다. 진부면에 산채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진부터미널 근처의 부림식당(033-335-7576)이 유명하다. 산골냄새 물씬 풍기는 된장찌개를 비롯해 취나물, 곰취, 참나물 등이 올라온다. 산채백반 1인분 8000원. 산채정식 1인분 1만2000원. 오대산 입구의 집단시설지구와 그 길목에도 오대산식당(033-332-6888), 비로봉식당(033-332-6597) 등 산채비빔밥을 차리는 식당이 많다.
●숙박 오대산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진부엔 특급 호텔인 켄싱턴플로라 호텔(033-330-5000)을 비롯해 펜션과 민박집 등이 많다. 진부면 소재지에도 모텔이 여럿 있고, 운두령 고갯길엔 막국수 송어회 등을 맛볼 수 있는 식당, 그리고 민박이나 모텔 같은 숙박시설이 많다.
●참조 오대산관리사무소 033-332-6417, 월정사 매표소 033-334-6919, 월정사 종무소 033-339-6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