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한테 술(酒) 사는 일처럼 즐거운 일이 없다는 걸 모른다면 세상 헛산 겁니다."


그럴 것이다. 그것을 난 수차례 이미 경험했다. 이 때문이다. 웃음이 묻어나고 절로 행복해지는 이 명언은 신경림 시인의 에세이집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문학의문학刊)에 등장한다. 케케묵은 어른들의 말이라고, 함부로 무시하는가. 아니면 주당의 그럴싸한 핑계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가.


가령 그렇다 치자. 하면 당신이 어리거나 술을 몰라서다. 나 자신도 과거에는 그랬으니까.


여하튼 세상 헛산 거라는 소리가 듣기 싫걸랑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거든 술(酒) 사고 볼 일이다. 그러면 기분이 살짝 나쁘지 않다. 금세 좋아진다. 이러면 상대를 굳이 설득할 필요가 없어진다. 설득할 필요가 없는, 영향력이 자연 생겨나서다. 해서 관계가 서먹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좋아질 수 있다. 차츰차츰 복잡한 문제가 풀릴 것이다. 알코올 효과 덕분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술(述)이 그것이다. 술(酒) 못한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대신 술(述)을 잘 하면 할수록, 그것도 영향력으로 인간관계에서 작용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형편없는 기억력 때문이다. 이에 망신을 크게 당한 적이 한번쯤은 누구나 있을 거다. 그렇다. 기억은 하등 믿을 게 못 된다. 하지만 기록(述)은 기억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록했기 때문에 기억나는 일은 왕왕 있어도 기록하지 않았는데 기억나는 일은 거의 없다. 이 때문이다. 얼굴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이름을 기록해 두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신뢰로 더욱더 빛나는 거다. 기억이 포스트잇 같다면, 기록은 딱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에 읽은 베스트셀러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갤리온刊)를 읽다가 퍼뜩 든 내 생각이 그렇다. 다음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대로 소개한다. 



포스트잇과 딱풀을 한번 생각해보자.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신장 전무는 사람을 ‘딱풀과’와 ‘포스트잇과’로 분류한다고 한다. 필요할 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메모지인 포스트잇은 참 편리한 제품이다. 하지만 때로는 꼭 필요할 때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우리를 당황하게 할 때가 있다. ‘포스트잇과’ 사람들은 바로 필요할 때 붙었다가 쉽게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편 ‘딱풀과’는 좀 미련한 종족이다. 뭐가 ‘좋다’하면, 혹은 ‘이게 맞다’ 싶으면 그 사람 하나 보고 미련하게 끝까지 남아 있다. 딱풀로 강하게 붙여놓은 것은 갑자기 떨어져 나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염려가 없어 좋다.



그렇다. 포스트잇이 기억과 비슷하다면 딱풀은 기록과 비슷하다.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게 기억인 것에 반해 기록은 잘하면 끝까지 내 곁에 온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삼성경제연구소가 뽑은 커뮤니케이션분야 대표 강사 이종선의 솔직한 고백이다. 고백은 위에 소개한 책이 그 출처다. 왜 술(述)이 살면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솔직한 저자의 육성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어느 날, 하늘의 경고처럼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리다가 ‘초기화’라는 버튼을 호기심에 눌러보았는데 모든 전화번호가 지워져 버린 것이다.


단 몇초 사이에 전화번호 함은 텅 비어 버렸다. 순간 기분이 얼마나 멍했는지 모른다. 마치 사막 한복판에 홀로 서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15년간의 관계들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어져 버렸다. 지극히 수동적인 관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들이 나를 찾지 않는 한 나는 그들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그간 나는 내가 늘 시간에 쫓김을 알고 있을 상대에게 무언의 양해를 구하며 부재중의 전화에 소홀하거나 더 급한 일 때문에 그들을 미룬 적이 많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게 안부를 물어 주고, 건강을 염려해 주고, 격려해 주는 그들에게 받는 것에만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벌 받은 그날 이후, 나는 부재중 전화가 와 있으면 바로바로 전화해 누구인지 확인하고 정성껏 번호를 입력해둔다. 저장된 번호가 1000개 넘던 때는 1년에 한번 안부 전화하는 데도 소홀하더니, 요즘은 한개 한개가 소중하다. 이제 겨우 스무개 남짓 모인 번호들에 안부 문자도 종종 보낸다.


그렇다.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든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승자가 되는 법이다. 내 편으로 만들려면 내가 아는 상대를 두고 “누구?”냐고 기억이 안 난다고 되묻는 식이면 싸가지 없어 보여 곤란하다. 그것은 예(禮)가 아니다. 그뿐인가. 신(信)도 아니다. 나아가 의(義)도 아니고 인(仁)도 아니기 때문에 평판이 좋아질리 없어 4가지 없는, 그래서 시쳇말로 ‘싸(四)가지 없는 인간’이라는 소리를 마침내 듣게 되는 거다.


‘싸(四)가지 없는 인간’은 성공할 수 없다.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들 수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베스트셀러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비행기를 최초로 발명한 라이트 형제로 예를 든다. 이를 그대로 소개한다.


비행기를 최초로 발명한 이들은 라이트 형제라는 건 초등학생도 안다. 그런데 그들은 발명만 했다. 그들은 결국 세상에서 밀려났다. 그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고립되었다. 비행기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다 고소하고 자신들의 업적에 취해 발전을 게을리했던 라이트 형제 대신 세상은 글렌 해먼드 커티스를 택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까지 나서서 심성 좋은 비행기 발명가 커티스가 라이트 형제와의 재판에서 이기도록 힘써 주었다.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비행기를 만들었지만 그들이 만든 항공사는 바로 세상에서 없어진 반면 커티스의 항공사는 미국 최대 항공사로 성장을 거듭했다.


이 차이가 뭘까. 자신의 것을 자신이 다 가지려는 것과 시작은 자신이어도 세상 사람들에게 이롭게 나누려는 차이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나의 꿈을 이루는 것 이상으로 남이 꿈을 이루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이긴다. 남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것에 쓰는 시간은 자신에게 우연인 척하며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그렇다. 내 인생, 내 사업이 술술 풀리지 않는 비밀의 근원을 파헤쳐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좋은 사람들, 또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가까이 곁에 둘 수 있는 술(酒) 사는 것에 인색한 결과이고, 또 싸가지 없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똑똑한 머리만 믿고, 술(述)의 힘을 본능적으로 무시한 결과 때문이다. 술(酒)만 찾으면 못난 놈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술(述)하려고 노력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되는(成功) 놈으로 ‘술술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