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정우가 달린다. 그 옆으로 검은색 폼 나는 차 한대가 같이 달린다. 이때 흘러나오는 내레이션. "의식하거나, 물러서거나, 망설이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스타일대로 간다. MY WAY OOO"

 

#2. 제시카 고메즈가 두팔을 벌려 바람을 맞는다. 넓게 벌린 그의 품 안으로 바람이 꽉 차는 순간, 그가 말한다. "100%까지 빠져보세요. 탈수록 100%, OOO"

 

#3. 김강우, 타이거JK, 한상진 등 30대의 멋진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30대의 사랑, 인생 등 수다삼매경이 한창이다. 이 수다의 마무리는 이렇다. "진짜 청춘은 30대부터야. 내 스타일을 아는 거지. OO"

 

자, 지금부터 문제 나간다. 위는 최근에 방영된 자동차 광고 3가지다. 그렇다면 각각의 광고마다 동그라미에 들어가는 브랜드명을 채워 넣어보자. 세가지 중 몇개나 답을 적을 수 있는가.

 

"이상하다. 광고는 기억이 나는데 저게 무슨 브랜드였지?"

 

TV마다 유독 빵 터지는 반전으로 재미를 주거나 세련되게 감성을 자극하는 CF들이 가득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CF는 더더욱 튀어야 살아남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CF는 이른바'대박'을 치는데 이상하게 브랜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CF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패션마케팅 컨설팅업체 말콤브릿지의 김소희 대표는 단호한 목소리로 "브랜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CF에 업체들이 그토록 많은 비용을 쏟아 부을 필요가 있냐"며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튀는 CF, 광고효과 얼마나 보셨나요?

 

김 대표는 패션업체들의 마케팅과 관련된 분야를 전문적으로 컨설팅해주는 패션 마케팅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서부터 이제 막 커나가는 중소기업까지, 최근에도 여러 업체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바쁘다는 김 대표. 그런데 업체들과 일을 진행하기 위해 첫만남을 가질 때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며 말문을 연다.

 

“마케팅이라고 하면 CF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물론 CF가 마케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맞지만 그게 다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다들 ‘어떻게 튀는 CF를 찍을까’만 고민하고 있으니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마케터 입장에서는 안타깝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느꼈던 점을 들어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간다.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하다보니 그는 광고PT를 하는 장소에도 자주 초대가 되곤 한단다. 그는 “실제로 PT현장에 나가보면 광고업체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며 “기발한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떨어질지도 모르는 PT를 위해 실제 광고를 찍어오는 팀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열심히 한 것도 알겠고 아이디어도 기발해요. 그런데 핵심을 헛짚는 경우가 많아요. 무조건 웃기려고만 하다 보니 이 브랜드에 대한 설명은 전혀 안 되는 거에요. 이 브랜드의 차별점이 무엇인지 광고 속에 전혀 드러나지 않죠.”

 

여기서 잠깐, 위에 언급한 문제로 돌아가보자. 순서대로 정답을 얘기하자면 ‘토스카’ ‘라세티’ ‘로체’다. “그러나 세광고의 브랜드 순서를 뒤바꿔 세상에 내놓는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게 김 대표의 따끔한 지적이다.

 

“마케팅이란 결국 소비자의 뇌리 속에 나의 브랜드, 나의 제품을 각인시키는 작업입니다. 내 브랜드만의 유일한 장점, 매력 등을 부각시켜야 소비자에게 특별한 기억을 심어줄 수 있는 거죠. ‘스타일리쉬’하다는 건 분명 장점이지만 우리 브랜드만 갖고 있는 장점은 아니죠. 그러니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비슷비슷한 CF 속에서 브랜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김 대표는 “문제는 광고제작자가 아니라 업체들이다”고 확실하게 못박는다.

 

“내 브랜드를 어떻게 포지션하고,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킬지를 고민해야 해요. 내 제품의 차별점을 업체가 광고제작자에게 먼저 선명하게 전달해야 CF역시 그러한 점을 더욱 살릴 수 있는 겁니다.”

 

◆확실한 브랜드 강점, 정말 있으세요?

 

그렇다면 잘 만든 CF란 어떤 것일까. 김 대표는 "하려면 타이레놀처럼 해야 한다"고 예를 든다.

 

"아주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두통약은 '맞다, 게보린'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타이레놀이 '우리는 게보린이나 펜잘과는 완전히 다른 강점이 있다'는 걸 소비자들에게 아주 선명하게 알리는 데 성공합니다. '한가지 성분, 타이레놀'이란 무시무시한 강점을 소비자 머리에 박아 넣은 거죠."

 

한가지 성분, 타이레놀. 이때부터 소비자의 머릿속엔 이와 같은 알고리즘이 들어가게 된다.

 

'한가지 성분이라고? 그럼 다른 약은 성분이 여러 개인가보지? 왠지 한가지 성분만 들어간 게 더 안전하고 좋아 보이는데.'

 

"현재 타이레놀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동의 1위였던 게보린을 CF 하나로 뒤집은 겁니다. 완벽한 강점을 보여주는 광고는 쉽게 기억되고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는 특히 "요즘처럼 과포화된 시장에서는 이 같은 브랜드 차별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예전에는 반복적으로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대부분의 업종이 과포화 돼 있습니다. 어떤 분야든 1, 2위 업체가 아니라면 비슷비슷한 경쟁 상대들과 치열한 승부를 거쳐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브랜드의 포지셔닝이란 브랜드를 멋있는 위치에 갖다 두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차별적 강점이 있는 위치에 두기"라고 설명한다.

 

"패션분야만 보더라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모릅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건 모든 브랜드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스타일리쉬 하려고만 노력한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요즘 같은 때 스타일리쉬 하지 않은 브랜드가 얼마나 있는지. 정작 중요한 것은 '소비자에게 얼마나 이점을 줄 수 있느냐'인데 말입니다."

 

그가 패션브랜드 '유니클로'를 예로 든다. 유니클로는 멋진 스타가 나오는 CF를 하지도 않고, 굳이 스타일리쉬 하다는 것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기본 티셔츠, 면바지 등 조금은 촌스럽지만 꼭 필요한 아이템들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모두가 똑같이 스타일리쉬를 강조할 때,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을 선택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확고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맞아떨어질 때 브랜드는 폭발력을 지닙니다. 그게 바로 브랜드의 강점입니다. 대게는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라고 하면 '가격'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자꾸만 가격을 낮추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이익은 가격 외에도 많습니다. 그것을 브랜드의 강점으로 연결시키고 표현하는 것, 요즘 시대에 성공을 향한 가장 확실한 열쇠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