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은 40여년 이상 롯데그룹에서 잔뼈가 굵었고 20여년 가량 여러 계열사와 그룹의 부회장으로 재직했다. 신준호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그는 지난 2007년 회장이 됐다. 그룹에서 롯데우유(현 푸르밀)가 분가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그런 그가 검찰의 칼끝에 겨눠져 있다. 법정공방이 예고되고는 있지만 배임, 분식회계 등의 혐의가 주로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찬구 전 회장은 2세 경영인이다. 박 회장의 아버지는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다. 박찬구 전 회장은 현재 그룹 경영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을 역임했다. 꼭 4년간이다. 지난해 여름 그룹 경영에서 배제된 그는 최근 자신이 재직했던 금호그룹 주요 계열사 주식을 팔면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신준호 회장, 대선주조 매각 과정 탈법 의혹
올해 69세인 신 회장은 40여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대 중반이던 지난 1968년 롯데제과 기획실장으로 일하다 관세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곧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롯데그룹을 일궜던 신격호 회장의 신임과 혈연, 청년 신준호의 기업 경영능력이 바탕이 된 결과였다.
여러 중책이 맡겨졌다. 1977년 롯데건설 대표이사 등 여러 직위를 거친 끝에 1982년에는 부회장이 됐다. 부산과 롯데의 상징처럼 된 롯데자이언츠의 구단주를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맡았던 것도 그였다.
하지만 잘 나가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1996년 서울 양평동 소재 롯데제과 부지 의 소유권을 놓고 신격호 회장과 신준호 부회장 사이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형 신격호 회장이 동생 신준호 회장(당시는 부회장)에게 이 땅을 명의 신탁했는데 나중에 동생이 부지 소유권을 주장한 게 분쟁의 발단이었다.
동생은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법원에 내자 형은 동생의 그룹 내 직위를 모두 박탈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볼썽사나운 형제간 다툼은 서로가 한발씩 양보하면서 수개월 에 끝났다.
화해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신준호 회장의 롯데 내 위상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정중동 행보를 보이던 신준호 회장이 타 기업 인수 등으로 외형 확장을 시작한 것은 2004년 전후였다. 부도와 경영진의 구속, 경쟁사의 인수시도 등에 시달리던 사돈기업 대선주조의 경영권 방어와 지분 매입에 나선 것이 그때였다. 대선주조는 시원소주 등으로 유명한 부산ㆍ경남지역의 주요 주류업체다.
법정공방과 지분경쟁 등을 거쳐 2004년 10월 경영권 분쟁을 승리로 이끈 신 회장 측은 3년 후인 2007년 11월 한국금융지주 산하 사모펀드(코너스톤 에쿼티파트너스)에 3600억원에 대선주조를 팔았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은 이익금을 다 가져가지 않고 일부를 해당 사모펀드에 재투자해 여전히 대선주조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2007년은 그로서는 확장의 해이기도 했지만 독립의 첫해기도 했다. 조카인 신동빈 그룹 부회장(신격호 회장 아들)을 중심으로 롯데그룹이 재편되자 삼촌(신준호 회장)은 롯데햄ㆍ롯데우유 중 롯데우유를 가지는 선으로 독립을 택한 것이다. 이밖에 대선주조 인수, 대선건설 설립 등으로 소그룹 형성을 시도했다.
3년여가 흐른 지금 그에게는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최근 부산지검이 신준호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신 회장의 혐의는 2004년 사돈 기업이었던 대선주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가족 이름으로 대선주조에서 80억원을 차입하고 3년 만인 2007년 한국금융지주 산하 사모펀드인 코너스톤 에퀴티파트너스에 3600억원에 다시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남긴 것 등이다.
법원은 일단 혐의내용이 논란의 여지가 있고 주거가 명확한 이유 등을 들어 영장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부산지검 특수부는 신 회장을 기소하겠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신 회장과 검찰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일합을 겨뤘고 다시 법원에서 혐의를 다툴 가능성이 크다.
◇박찬구 전 회장, 작년엔 해임-올해는 주식 매각
신준호 회장에 비해 박찬구 전 회장의 경력은 상대적으로 평탄하다. 미국 유학 등을 마치고 돌아온 박 전 회장은 28세의 나이에 금호그룹에 첫발을 디뎠다.
34세에 상무(금호건설), 36세에 그와 오랜 인연이 있는 금호석유화학에서 부사장이 됐다. 49세이던 1997년 금호석유화학의 사장, 56세이던 2004년에는 부회장이 됐다.
65세까지는 9년이 남은 때였다. 금호가(家)에서는 본래 65세가 특별하다. 박인천 선대 회장의 장남인 고 박성용 2대 회장은 65세가 되던 1996년 차남인 고 박정구 3대 회장에게 그룹의 경영권을 넘겼다. 박정구 회장도 65세가 되던 2002년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연스레 3남인 박삼구 당시 회장에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 것.
그룹 전반은 아니지만 박찬구 회장도 58세에 회장(화학부문)이 됐다. 그룹의 외형도 커졌다. 형(박삼구 회장)이 주도했지만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 등도 외부적으로는 박찬구 회장도 측면 지원한 것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2008년 이후의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는 박찬구 회장에게도 위기였고 새로운 상황으로 다가왔다. 형제간 분란도 생겼다.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씨앗이었고 그룹 전반은 위태로워졌다.
박삼구 회장은 지난해 7월 그룹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면서 동생(박찬구 회장)을 보직 해임시키면서 동반 퇴진으로 몰고 갔다. 자진 사퇴와 해임은 현격한 차이였다. 그룹 일가의 동의없이 갑작스레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린 박찬구 회장의 돌발행동이 문제가 된 것이다.
채권단은 일단 한시적이긴 하지만 박찬구 전 회장 쪽에 금호석유화학 등 유화부문을, 박삼구 명예회장 쪽에 금호타이어 경영을 맡긴다는 방침이다. 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의 협의체제로 운영 된다.
일단은 이전보다 상황이 나아졌지만 박 전 회장은 채권단과 껄끄러운 박 명예회장쪽과 모두 상대해야 하는 처지다. 채권단 손에 놓이게 된 금호는 여전히 어렵고 박 전 회장은 새로운 시험대에 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