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드라이버를 들고 온 사람마다 “이 채는 지금보다 10야드 더 나가는 신병기”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 회장은 “내가 30년도 넘게 골프를 쳤는데, 그 신병기들의 효과가 사실이라면 난 벌써 파4홀 정도는 거뜬히 1온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드라이버를 신병기로 바꿀 때마다 거리가 10야드씩 더 나갔을 테니까 말이야. 다 소용 없는 얘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Far & Sure)’에 대한 골퍼들의 열망은 스윙의 개발과 함께 골프장비의 발전을 촉발했다. 17세기에 이미 이론서가 쓰였으나 골프채는 19세기에 접어들어서 히커리 나무로 만든 샤프트와 아이언클럽이 등장하면서 현대적인 골프장비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클럽 한개의 무게가 현재의 두배 가까이 되는 600g이 넘었는데 히커리 샤프트의 개발로 100g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최근의 골프장비 기술은 첨단과학과 접목돼 몇개월마다 신제품이 나올 정도다. 이병철 회장의 명언을 무색케 할 정도로 비거리 증대와 정확도 개선에 괄목할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PGA대회를 치르는 골프장들이 너무 좋은 스코어가 나오자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코스를 고치는 등의 법석을 떠는 것도 골프장비의 개선 때문이다. 골프장비산업은 가히 첨단산업이라 할 만큼 물리학 재료공학 항공우주공학에 나노기술까지 동원되면서 아마추어골퍼들에게 환상을 갖게 한다.
특히 클럽의 소재는 철이나 텅스텐, 또는 구리의 합금에서 티타늄과 카본이나 강화탄소섬유 등 비금속 소재를 사용하면서 놀라운 비거리를 실현해내고 있고 샤프트도 스틸에서 그래파이트로, 다시 복합소재나 초경량스틸로 골퍼들의 꿈을 담아내고 있다. 골프채의 구조 역시 이른바 다양한 우드에 하이브리드라는 다목적용 골프채까지 개발돼 짧은 비거리와 부정확성으로 고민하는 골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필드에 나가지도 않고 필드의 상황을 그대로 입체영상으로 재현해 즐길 수 있는 스크린골프도 대중화됐다.
획기적인 골프장비의 발달은 다분히 아날로그적 스포츠인 골프를 디지털 스포츠로 변화시키고 있다. 골프만큼 아날로그적인 요소와 디지털적인 요소가 혼합된 스포츠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소재와 첨단과학이 골프에 응용돼 골프의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더라도 장비를 다루는 사람을 디지털화할 수는 없다. 아무리 멀리 날아가는 볼, 쉽게 칠 수 있는 골프채가 나오더라도 스윙동작을 기계가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윙의 주체가 사이보그가 아닌 사람인 이상 디지털적인 스윙동작은 불가능하다.
골프에서 아날로그적인 요소의 제거가 불가능하다면 디지털적인 요소와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디지로그적 사고와 훈련이 불가피하다. 첨단소재와 첨단과학으로 만들어진 골프장비도 잘 단련된 육체와 좋은 훈련으로 다듬어진 스윙, 그리고 골프장비를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완전한 디지털화가 불가능하다는 점, 이것이 바로 골프가 불가사의한 스포츠인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