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에서 그려지는 그림이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화가들의 명암법에 의해 서서히 입체화되다가 브르넬레스키에 의한 원근법 발명으로 입체감이 더욱 강화됐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아바타>는 현대 과학기술의 현장을 보여주는 시의적절한 영화이면서 실재와도 흡사한 입체감을 보여주는 첨단의 시각예술이다. 영화는 과학의 발전에 따른 인간소외와 자연 파괴에 대한 반성적 되물음이기도 하지만 평면을 입체로 보이게 하는 기술의 총아다.
라디오를 통해 물소리를 들으며 청취자 스스로 물을 상상했던 것이 TV에 의해 단절되고, 흑백 화면에서 색의 자유로운 상상이 컬러 TV에 의해 해소됐다. 이렇듯 세상은 입체와 같은 다양함으로 무장돼 가고 있지만, 예술작품에서는 오히려 평면화 돼가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평면뿐만 아니라 흑백 TV와도 같은 단편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평면을 평등과 같은 입장에서 해석하는 방식이며, 복잡한 세상에 대한 불만 섞인 호소이거나 하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예술적 항변이다.
영희의 <붉은 머리 소녀>는 화려한 인생을 꿈꾸기보다는 소담스럽고, 담담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화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평면의 캔버스 위에 입방체인 '척'하는 시각의 거짓을 지적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친근성에 대해 다양한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접근이다. 예쁘고 화려함을 꿈꾸기보다는 조금은 촌스럽고, 조금은 낯선 상태로서 예술가 자신과 작품과의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검은색 배경과 검은색 슬립은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으로서의 평등이며, 회색빛 배경과 핑크색의 얼굴과 맨살은 색으로만 구분되는 평면이다.
잘 그린다는(무엇과 흡사한, 혹은 입체감이 느껴지는) 것은 약간의 훈련을 가하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작가는 잘 그린다는 것보다는 마음과 감성이 가는 그대로의 표현을 중요시한다. 평면의 회화에 담겨진 정신세계는 인공을 가하고 싶지 않은 무위(無爲)의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적 정신이다. 평면을 평면답게 하는 것은 작위(作爲)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뜻을 지닌 무위와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