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가들이 '섬진강 물을 마시는 자라의 형국'이라 말하는 구례 오산(鰲山 531m). 그 정상 아래에 터를 잡은 사성암(四聖庵)은 조망이 아주 빼어난 암자다. 바위 벼랑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덕에 오산을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과 널찍한 구례 들판, 그리고 장엄한 지리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구례 사성암은 백제시대에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한 이듬해 건립한 암자로 알려져 있다. 이후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네명의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했다 하여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역사적으로 내로라하는 고승들이 이곳에서 가부좌를 튼 까닭은 무엇보다 참선하기 좋은 명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추노>의 태하와 혜원이 숨었던 암자

사성암은 산꼭대기에 있고 찾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아 예전엔 방문객이 그다지 많지 않은 섬진강변의 호젓한 암자였다. 요즘 같은 봄날, 섬진강과 지리산 주변에 봄볕이 쏟아지며 매화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도 몰려든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은 이 암자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러다 2004년 방영된 SBS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주인공 길상과 서희가 불공을 드린 도솔암의 촬영 장소로 알려지면서 방문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엔 KBS드라마 <추노>의 초기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극중에 '여운암'으로 나오는 이 암자는 4편에서 태하와 혜원이 도망치던 중 숨어들던 곳이다.

사성암 오른편 바위벽에 붙어있는 약사전엔 원효가 손톱으로 바위에 그렸다는 마애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오른손은 가슴 위에 있고 왼손은 가슴 아래에 대어 찻잔을 받들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작품으로 보고 있다.

사성암 주위의 기암괴석을 흔히 '오산 12대'라 부른다. 지리산 화엄사를 향해 절하는 자리의 배석대, 석양을 감상하기 좋은 낙조대,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병풍대, 하늘을 우러르는 앙천대, 연기조사가 마애불로 화했다는 아미타불 닮은 관음대 등이 그것이다. 12대는 모두 빼어난 조망과 경관을 자랑한다. 그래서 사성암은 비록 자그마한 암자이지만 경내의 암벽 사잇길을 오르내리며 널찍한 구례평야와 발아래에 휘돌아가는 섬진강, 그리고 하늘금 이룬 지리산 조망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짧다.

오산 정상으로 가려면 사성암에서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을 경유해 10분쯤 걸어야 한다. 정상에 서면 섬진강 주변으로 구례 들판이 널따랗고, 그 너머로는 왼쪽부터 노고단 반야봉 왕시루봉이 우뚝하다. 왕시루봉 너머로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오산 남서쪽의 구례 문척면 죽마리 도로에서 사성암까지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길이 있다. 그렇지만 일반 승용차는 출입할 수 없다. 대신 주차장에 차를 대고 셔틀버스(어른 왕복 3000원)를 이용해야 한다. 10분 소요.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가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산행코스도 있다. 오산 등산로는 경사가 조금 가파르지만 위험한 곳은 없다. 산행 시간도 3시간 이내로 짧아 가족 산행지로 적합하다. 오산 북서쪽에서 올라 정상을 거쳐 북동쪽으로 내려오는 각금마을~(50분)~사성암~(10분)~정상~(10분)~샘터~북동릉~(40분)~구름재 코스는 쉬는 시간까지 포함한 산행시간이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조선 3대 명당에 자리 잡은 운조루

사성암에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雲鳥樓)는 '조선 3대 명당자리'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고택. 영조 때 무관이던 류이주가 관직에서 은퇴하고 1776년(영조 52)에 지은 건물이다. 운조루의 당호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라는 의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칠언율시인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雲無心以出岫), 새들은 날기에 지쳐 우리로 돌아오네(鳥倦飛而知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예부터 이 집터엔 하늘에서 가락지가 떨어졌다는 금환락지(金環落地), 진흙 속에 금거북이가 묻혀 있다는 금구몰니(金龜沒泥), 금·의·진주·산호·호박과 같은 다섯가지 보물이 쌓여 있다는 오보교취(五寶交聚)의 3대 진혈이 있다 하여 관심을 끌었다. 풍수가들은 안채를 금구몰니, 행랑채 밖 연못자리를 금환락지, 숲 속의 돌탑자리를 오보교취로 믿고 있다.

운조루 대문엔 호랑이뼈가 매달려 있었다. 그 사연은 이렇다. 평북 병마절도사로 부임하던 류이주는 삼수갑산을 넘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용감무쌍한 무인이었던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채찍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 가죽은 임금인 영조에게 바쳤다. 이 일로 그는 '박호장군'이란 칭호를 얻었다.

당시 호랑이뼈는 잡귀의 침범을 막기 위해 운조루 홍살문에 걸어 두었다. 그런데 호랑이뼈는 민간에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호랑이뼈를 조금씩 갉아 가곤 했는데, 언젠가 아예 도난을 당하고 말았다. 지금은 '말머리뼈'로 대신하고 있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큰사랑채 누마루 아래에 있는 거대한 수레바퀴. 소 세마리가 끌었다는 수레를 얹었던 바퀴라 한다. 쇠를 전혀 쓰지 않고 순수하게 나무로만 만들어진 바퀴인데, 이 집안이 누렸던 부의 규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운조루 주인은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 줄도 아는 부자였다. 그 증거가 곳간 뒤채에 있는 뒤주에 남아있다. 두 아름쯤 되는 통나무 뒤주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씌어 있다. 즉 '다른 사람도 능히 뒤주의 마개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집안에서 한해에 수확하는 쌀은 200가마 정도였는데, 이 뒤주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풀었던 쌀이 약 36가마라 한다. 주인이 이 뒤주를 곳간 뒤채에 둔 까닭은 가난한 사람들이 쌀을 퍼갈 때 주인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전한다. 운조루 입장료 1000원. 주차 무료.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통영-대전고속도로→함양분기점→남원 나들목→19번 국도→구례읍→861번 지방도→5km→사성암 입구 주차장(문척면 죽마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셔틀버스(왕복 3000원)를 타면 10분 만에 사성암에 닿는다. <수도권 기준 약 4시간30분~5시간 소요>

●별미 운조루에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토지면 외곡리의 섬지가든(061-782-5576)에선 봄철 별미인 황어와 참게를 맛볼 수 있다. 참게탕은 3만~5만원. 황어는 3월 하순부터 잡히기 시작한다. 황어회 3만~4만원.


●숙박 구례읍의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섬진강호텔(061-782-7727), 글로리호텔(061-781-3030), 신흥각(061-783-3628), 명지여관(061-782-2505), 삼성장(061-782-2132), 온천각(061-782-0021), 그린파크(061-782-7998) 등이 있다.

산수유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엔 지리산온천랜드(061-783-2900), 지리산프라자호텔(061-782-2171), 송원콘도미니엄(061-780-8000), 노고단관광온천장(061-783-0161) 등 숙박시설이 많다.

●참조 구례군청 대표전화 061-782-2014, 사성암 종무소 061-781-4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