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국내 은행권의 최대 화두는 인수·합병(M&A). 그러나 신한은행은 이같은 M&A 폭풍전야 속에서 여느 은행들과 달리 멀찌감치 뒤로 물러서 있다. 

만일 국민 + 우리, 국민 + 하나, 국민 + 외환은행 등 경쟁 은행이 합병한다면 신한은행에도 큰 위협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이백순 행장이 이끄는 신한은행은 '공격보다 내실'이라는 기치 아래 흔들림 없는 독자 행보로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 M&A 대신 해외로 '메가뱅크의 꿈'
 
"2014년까지 국내 은행 간 합병에 참여하지 않겠다."
 
이 행장은 지난 5월4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가 열리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기자들과 오찬을 갖고 "인수ㆍ합병을 통해 규모가 커지면 경쟁력이 있겠지만, 신한은행은 조흥은행과 LG카드 인수로 추가 M&A를 서두를 시기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이어 "은행간 짝짓기는 모두 신한은행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은행간 합병에 따른 위험을 분산하려는 고객의 수요를 유치하고 합병 후 안정되기 전까지 영업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국내 은행 M&A에서 한발 물러선 신한은행은 보다 원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 이 행장은 국내 금융시장 재편논의와 관련해 "국내에서 한정된 파이를 나눠 먹기보다 해외로 눈을 돌려 글로벌 전략을 통한 성장으로 세계적인 은행이 되는 것이 진정한 메가뱅크의 길"이라고 말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도 현실적이다. 이 행장은 국내 은행 M&A 대신 일본과 인도, 베트남 등 해외시장 진출에 주력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 행장은 "해외로 나가 이익을 분산시켜야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며 "예전에는 거점 확보에 주력한 반면 지금은 일본과 베트남, 인도 등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은행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반이 돼야 할 국내 신한은행의 입지 역시 차분하게 다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신한호의 새 수장에 오른 이 행장은 경기침체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신한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7487억원으로 그룹 내 동생 격인 신한카드의 순이익 8568억원보다 1000억원 이상 뒤쳐졌다. 지주회사 출범 이후 줄곧 맏형 역할을 자임했던 신한은행의 체면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취임 1년 여 흐른 지금, 이 행장은 '위기에 강한 은행'이라는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행장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신한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자기자본비율을 15.13%로 높이고, 고정이하여신비율을 1.0%로 유지시켰다.
 
은행 실적도 회복세가 두드러진다. 신한은행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5886억원으로 전 분기(1841억 원) 대비 4045억원(219.7%)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도 5149억원(698.3%) 늘었다. "올해 신한은행이 신한금융지주 계열사 중 1위의 실적을 거둘 것"이라고 자신했던 이 행장의 의지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한 DNA를 앞세운 이 행장의 리더십에 따라 모든 부문에서 완연한 실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소통으로 길을 찾는 CEO
 
이백순 행장은 신한은행 가운데서도 가장 '신한스러운' 인물로 꼽힌다.  조직에 대한 로열티와 고객ㆍ영업 제일주의, 도전정신 등으로 요약되는 '신한의 DNA'를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똑똑하고 잘난 개인주의적 스타일의 천재보다는 회사를 위해 과감히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조직우선형' 인재를 중시한다.

이 행장 또한 그러한 '신한 DNA'에 가장 잘 들어맞는 인재라는 평가를 얻으며 요직을 두루 거쳤다. '포스트 라응찬(신한금융지주 회장)' 시대를 책임질 대표주자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971년 덕수상고 졸업 후 제일은행에서 은행원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1982년 신한은행에 합류한 뒤 비서실장, 테헤란로기업금융지점장, 도쿄지점장 및 중소기업영업추진본부장 등 본부와 현장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4년 신한지주 상무에 선임된 데 이어 신한은행 부행장을 거쳐 2007년부터 신한지주 부사장을 맡아왔다. 테헤란로기업금융지점장 시절 전국 영업점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수상한 '영업왕'으로도 유명하다.
 
신상훈 전임 행장이자 신한지주 사장이 용맹과 지혜를 갖춘 '덕장'(德長) 스타일의 경영자로 꼽힌다면, 이 행장은 덕과 용맹을 겸비한 '지장'(智長)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바쁜 일정에도 방대한 분량의 독서를 자랑한다. 책이나 신문 등에서 발췌해 한글, 영어, 일어로 메모하고 스크랩해둔 수십권의 노트가 그의 소중한 보물이다.

이러한 이 행장의 경영 철학을 잘 드러내는 가르침으로 '대인포의(載仁抱義)'와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 자주 언급된다.
 
대인포의는 仁을 머리에 이고 행하며 義를 가슴에 품고 거처한다는 말. 가족 같은 사랑(仁)이 충만하되 기본과 원칙(義)을 지키는 경영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행장 취임사에서도 인용했던 '상하동욕자승'은 전쟁에서 장수와 병사가 뜻을 같이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뜻. 이 행장은 "신한은행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선 영업 창구 행원부터 행장까지 같은 이상과 비전을 가지고 한몸, 한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직원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것. 이백순 행장이 끌어가는 '신한DNA의 진화'에 금융권의 기대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