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의 태안사(泰安寺)는 742년(경덕왕 1)에 창건한 절집. 919년(고려 태조 2) 윤다(允多)가 중창했고, 개산조인 혜철 국사가 이 절에서 법회를 열어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태안사 입구에 있는 조태일 시인의 기념관
보성강의 지류인 태안사 계곡은 입구에서 절까지 2km 정도로 여느 계곡길보다 짧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넘친다. 고로쇠나무ㆍ떡갈나무ㆍ단풍나무ㆍ소나무가 우거져 있는 짙은 숲길을 오르다보면 풍경 소리보다 먼저 <국토> 연작시와 <식칼론> 연작시로 '국토와 식칼의 시인'으로 불리던 조태일(趙泰一, 1941~1999) 시인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조태일 시인의 '국토 서시 전문
태안사는 소외된 민중과 우리 땅을 사랑했던 조태일 시문학의 탯자리다. 1941년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생전에 "나의 시는 태안사에서 비롯되었고 태안사에서 끝이 난다"고 말하곤 했다. 그를 기리는 시문학기념관이 태안사 입구에 터를 잡게 된 연유다. 이곳엔 시인의 유품과 작품, 시인을 기리는 문학작품 등 2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조태일 시문학관을 나와 다리를 건넌다. 절집에선 다리 하나에도 의미를 새겨 넣는다. 태안사엔 모두 다섯개의 다리가 있다. 속세의 미련을 못 버렸다면 여기서 돌아가라는 귀래교(歸來橋), 마음을 씻으라는 정심교(淨心橋),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지혜를 얻으라는 반야교(般若橋), 깨달음을 얻어 도를 이루라는 해탈교(解脫橋),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속에서 불계로 들어가는 경계라는 능파각(凌波閣).
하지만 요즘 절집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승용차로 오르기 때문에 다섯개의 다리를 모두 그냥 지나쳐 절 앞마당에 닿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다리인 능파각은 반드시 걸어야 한다.
능파각은 계곡을 잇는 다리 위에 누각을 세운 누교(樓橋)다. 다리에 지붕을 씌워 누각 역할도 겸하고 있다. 사찰의 다리 중 운치 있기로 손꼽히는 다리는 여기서 가까운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 송광사의 삼청교, 여수 흥국사의 홍교, 그리고 멀리로는 강원도 고성 건봉사의 능파교가 떠오르는데, 태안사 능파각도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능파(凌波)'란 원래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절집에선 '파도를 넘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파도를 넘듯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청정한 부처님의 품으로 들어오라는 의미다.
송광사, 선암사,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찰
능파각은 비록 사천왕을 모시지 않았지만, 천왕문 역할도 맡고 있다. 능파각을 지나 어여쁜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태안사 일주문이다. 일찌감치 지났어야할 일주문이 여기에 있는 까닭은 충혼탑과 연못을 조성하면서 능파각 아래쪽에 있던 일주문을 위쪽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부도밭 옆에 있는 일주문은 주변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그런대로 위치 선정에 애쓴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격식엔 맞지 않는다.
일주문 옆엔 초록의 대숲으로 둘러싸인 부도밭이 있다. 태안사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큰스님들의 혼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다. 태안사는 인근 조계산의 송광사나 선암사, 지리산 화엄사 등에 가려 명성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때 이들 세곳의 절집을 모두 말사로 거느렸던 대찰이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선문구산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연 적인선사 혜철(785~861)의 부도, 제2대 조사인 광자대사 윤다(864~945)의 부도 및 탑비, 효령대군이 세종을 위해 만들었다는 대바라 등 보물급 문화유산이 여럿 남아 있다.
일주문에서 보면 아래로 제법 넓은 연못이 보인다. 연못의 중앙에 떠있는 작은 섬엔 고려 초기의 작품인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태안사의 상징인 듯 여겨지는 예쁜 풍경이다.
태안사엔 청화(淸華, 1924~2003)스님의 흔적도 남아있다. 치열한 수행 정신과 청빈한 삶으로 수행자들의 귀감이 됐던 청화 스님은 상무주암 백장암 사성암 등 20여곳의 토굴을 옮겨 다니며 수행한 선승. 40여년 간 하루에 한끼 식사만을 하는 일종식(一種食), 자리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을 계속해 성불의 경지에 올랐다. 청화 스님은 무소유의 실천적 삶을 산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었다.
2005년 출간된 소설 <청화 큰스님>(랜덤하우스)엔 청화스님의 어린 시절부터 출가 이후의 치열했던 구도의 길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1985년 태안사에 주석하게 된 청화스님은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절을 맡아 지금의 태안사를 있게 했다.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장성 분기점→고창돚담양고속도로→대덕 분기점→호남고속도로→석곡 나들목→18번 국도→태안사 <수도권 기준 4시간 30분 소요>
●숙박 태안사 들어가는 길목인 죽곡면의 원달산막(061-362-4695), 하늘나리마을(061-362-8501) 등에서 숙박할 수 있다. 승용차로 10~20분 거리의 섬진강변의 고달면 가정마을(대표 011-626-0849), 청소년야영장(061-362-4186), 외갓집마을(061-362-8540, 010-5034-5587) 등에서 체험형 숙박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오곡면에 모텔리버사이드(061-363-8201), 기차마을민박(061-363-1103), 다래민박(061-362-2702), 압록강노을여행민박(061-362-7723) 등이 있다.
●별미 대사리탕은 빼놓을 수 없는 별미. 민물 고동인 다슬기를 전라도에서는 대사리라 부른다. 곡성에서는 물 맑은 보성강에서 잡은 대사리로 탕을 끓이는데, 국물맛이 구수하고 시원해 해장국으로도 아주 좋다. 죽곡면 보성강변의 연화가든(061-362-5392), 태안사 입구의 석천산장(061-363-6344) 등에서 맛볼 수 있다. 대사리탕 2만원(소), 3만원(대). 대사리수제비 5000~6000원.
●참조 곡성군청 061-363-2011, 태안사 종무소 061-363-6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