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산, 도솔산, 크리스마스고지, 대우산, 가칠봉,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펀치볼…. 강원도 양구에 속한 이 지명들은 모두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다. 이 중에서도 가칠봉(1242m), 대우산(1178m), 도솔산(1148m), 대암산(1304m) 등 1100~1300m를 넘나드는 높은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는 해안분지를 일컫는 펀치볼은 한국전쟁 당시 피아간에 처절한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펀치볼(Punch Bowl)이란 이름은 한국전쟁 때 종군하던 외국인 기자가 해안분지에 운해가 떠있는 풍경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펀치볼은 포도주에 과일 따위를 섞어 만든 '펀치'라는 칵테일을 담는 화채그릇을 일컫는 말이다.

남북 7.5㎞, 동서 5.5㎞의 타원형 분지

양구 해안분지가 강원도 산골에 있다고 해서 규모가 작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남북 7.5㎞, 동서 5.5㎞, 면적 44.7㎢로 제법 널찍한 타원형을 이룬다. 이 분지는 원래 커다란 호수였는데 지각변동으로 물이 빠져나가 나가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됐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뱀이 많아 주민들의 피해가 심했는데, 어느날 도승이 나타나 돼지를 많이 키우면 뱀의 피해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너도나도 돼지를 키우자 뱀이 없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뱀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곳 지명이 돼지 '해(亥)'자와 편안할 '안(安)'자를 써서 해안(亥安)이 됐다는 유래다.

양구 해안분지의 분위기는 강원도의 여느 산골과 비슷하다. 논농사도 짓고, 고랭지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요즘엔 사과농사도 짓는데, 심한 일교차 덕분에 과즙의 당도가 최고란다.

또한 해안면 만대리에 위치한 양구 해안 선사유적(문화재자료 제133호)에선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해안분지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 덕에 인류가 아주 오래 전부터 터전을 이루고 살았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적이다.

해발 1049m의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남쪽으론 해안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또한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북녘 산하도 지척이다. 눈 밝은 이들은 망원경을 보지 않고 육안으로도 북한군의 움직임을 볼 수 있고, 망원경으로는 북한 군인들이 밭에서 직접 농사짓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을지전망대에 배치된 해설사는 가칠봉에 얽힌 이야기부터 풀어 나간다.

"저 왼쪽으로 가칠봉이 보이죠. 거기 네모난 건축물이 있지요. 그게 바로 수영장입니다. 그곳에서 대북 심리전을 위해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하기도 했답니다. 1992년엔 여기서 탤런트 이승연이 미스코리아 미로 당선됐답니다."
 

남북한이 서로 미인계를 펼쳤던 사연

가칠봉수영장은 북한 쪽에선 탈의실이 보이도록 3면을 투명하게 했다. 휴전선 너머에서 초소를 지키던 북한의 젊은 병사들은 잠 못 드는 밤이었을 것이다. 이에 북한은 가칠봉에서 마주보이는 비무장지대 북측지역 운봉(일명 스탈린고지, 해발 1358m)과 매봉(일명 모택동고지, 해발 1290m)에 있는 20m 높이의 폭포 아래에서 여군이 목욕하는 방법으로 남한의 미인계에 대응했다고 한다. 이런 일 때문에 그 폭포의 이름도 '선녀폭포'로 불렸다. 남북이 대치된 비극적인 상황에서 펼쳐진 이 희극적인 미인계도 평화통일이 된다면 서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칠봉수영장의 위치는 해발 1242m.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영장이 아닐까싶다. 뿐만 아니라 살벌한 전운이 감도는 비무장지대 가칠봉 정상에 자리 잡은 지구촌의 이색 수영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북한에서 내려온 귀순자들이 자주 찾던 루트였다. 그래서 수영장을 건설하면서 일종의 귀순 유도시설로서 북한 쪽에서 눈에 확 띄게 세운 것이라 한다.

가칠봉수영장의 규모는 가로 50m, 세로 약 20m. 수심 1.5m. 이 정도라면 오지에서 수영을 즐기기 부족함이 없는 규모다. 수영장에 공급하는 물은 제4땅굴 탐지작업을 벌이던 중 발견한 지하수 수맥을 이용하는데, 얼마나 차가운지 몸이 금방 얼어붙을 지경이라고. 워낙 고지에 있어 한여름 복더위를 제외하고는 수영장 가는 게 오히려 군기교육대 못지않은 고통이었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을지전망대 아래에 위치한 제4땅굴은 1990년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다. 군사분계선에서 1.2㎞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이 땅굴의 길이는 2052m에 이른다. 땅굴의 높이가 낮고 너비가 좁아서 유리덮개에 덮인 내부관람용 전동차를 타고 관람한다.

해안분지의 민간인 마을은 출입이 자유롭지만,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을 관람하려면 해안면 월산리에 위치한 양구통일관(033-480-2674)에서 출입허가서를 작성하고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입장료 어른 2500원, 어린이 1300원. 주차료 승용차 2000원. 입장 시간 09:30~16:00. 을지전망대 제4땅굴 출입신청 시간은 오후 4시까지다.


여행정보

●교통 서울→서울춘천고속도로→춘천 분기점→중앙고속도로→춘천 나들목→46번 국도→→31번 국도→양구읍→동면→453번 지방도→해안분지 <수도권 기준 3시간 소요>

●숙식 해안면 중심가인 현리에 식당이 여럿 있다. 정주골한정식(033-481-6777)은 각종 산채 등 10여 가지 기본 반찬에 더덕ㆍ황태구이, 된장찌개가 올라온다. 한정식 1인 1만원, 2인 이상 주문 가능. 시래기고등어조림 1인 8000원.

현리에 동부여관(033-481-0687), 펀치볼민박(033-481-0878), 평화펜션(033-481-5672), 해안황토민박(033-481-8009, 6777), 박정자민박(033-481-8009) 등의 숙소가 있다.

●참조 양구군청 대표전화 033-481-2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