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햇볕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어둠에 익숙해진 저는 저도 모르게 눈을 찡긋 감아버립니다. 좁은 신발장 한쪽 구석,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얼마 만에 다시  날 찾는 거지? 아니면…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건가?” 만감이 교차합니다.
 
네,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신발입니다. 높은 킬힐에 꽤 화려한 장식이 빛나고 있는 하이힐이지요. 한때는 저도 주인의 패션을 완성해주는 아이템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년쯤 지나고 유행이 바뀌면서 서서히 주인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불려 나온 커다란 상자. 원피스며 늘어난 티셔츠 같은 옷, 책이며 CD, 장식품까지 온갖 물건들이 잡다하게 섞여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낡은 물건들이 모두 모인 걸로 봐서는 제 걱정대로 버려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아직은 꽤 쓸만한 물건들인데 쓰레기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안 쓰는 물건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가게 되살림터
 
상자의 문이 닫히고 주인이 테이프로 꽁꽁 여미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불안한 마음에 떨고 있는데 상자 너머로 희미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택배 왔습니다”
“아저씨, 여기요. 근데 이거 배달 진짜 공짜 맞죠?”
“네, 아름다운 가게와 연계가 돼 있는 곳에서는 배달 공짜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이구~그런데 물건이 생각보다 많네요.”
“하하 네, 기증 처음 해보는데 한번씩 버릴 물건들도 정리할 수 있고, 좋은 일 한다니까 기분 좋은데요. 전화 한번(1677-1113)이면 되는 데 자주 활용해야 겠어요.”
 
덜컹덜컹. 흔들림 때문에 잠에서 깼습니다. 아마도 차로 이동하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에 위치한 ‘아름다운가게 되살림터’. 이곳이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도착한 곳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레일 두개 입니다. 한쪽 레일엔 물건을 물류센터 안으로 들여보내더니, 다른 쪽 레인에선 반대로 물건을 다시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가 물건이 입고 되는 곳입니다. 첫번째 레일에 물건을 실어 보내면 ‘의류, 잡화, 도서, 가전’으로 분류를 해서 각자의 파트로 보내는 겁니다. 여기 옆에 레일이 보이죠? 이건 의류 부분에서 분류된 옷들입니다. 직원들이 옷 상태를 점검해 보고 입을 수 있는 옷은 물류센터 내부에서 정리에 들어가고, 입지 못하는 옷을 이쪽 레일로 내보내는 겁니다.”
 
마침 아름다운가게 내부의 자원 봉사자들 투어 교육이 있나 봅니다. 교육 담당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불안했던 제 마음도 안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참,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매장에서 팔 수 없다고 판단돼 레일 밖으로 보내진 옷들도 그냥 버려지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못 입는 옷들의 천을 재활용해 가방과 같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거나, 혹은 제3세계 아이들에게 보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곳에서 '진짜로 버려지는 물건'은 하나도 없는 셈이죠.

 
◆꼼꼼한 판별 과정, “고급 브랜드를 단돈 1만원에?”
 
레일에 실려 물류센터 내부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고, 각자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새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물류 센터 내부로 들어온 선생님이 설명을 덧붙입니다.
“버려진 물건들이 다른 곳에서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도록 판별하는 과정이 결국 우리에게는 물건을 생산하는 곳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름다운가게의 핵심 과정인 만큼 아무래도 보다 전문성을 갖고 신뢰 있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분이 필요하잖아요. 처음엔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이 일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는 직원들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골라내진 친구들은 의류 제품들입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레일을 왔다갔다하며 옷을 판별하는 과정이 끝나면, 판매 가능한 옷들은 옷걸이에 걸려 다른 공간으로 옮겨집니다. 날카로운 눈매로 가격을 책정하는 선생님들이 1500원에서부터 비싸면 1만원대까지 가격을 매기고, 그 옆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서툰 솜씨로 구슬땀을 흘리며 옷에 태그를 붙이는 모습도 보이네요.
 
나머지 제품들은 레일을 따라 잡화 파트로 갑니다. 이곳에서는 레일마다 ‘주방용품’ ‘신발’ ‘액세서리’ 등을 따로 분류해 판별작업이 한창입니다. 의류 제품은 판매불능으로 판별되는 경우가 약 50% 정도인데 반해, 잡화는 그 비율이 20% 정도로 낮은 편입니다. 
 
저 역시도  신발 작업대로 옮겨졌습니다. 겨울용 신발들은 다른 상자에 담겨져 따로 보관이 되고, 지금 당장 판매가 가능한 신발은 날카로운 판별을 거쳐 가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앞코가 나가진 않았는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신발 안쪽 가죽이 삭아서 끈적거리진 않는지, 밑창이 너무 닳아 걸을 때 균형을 흐트러뜨리진 않을지 모든 것을 꼼꼼히 점검합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친구들은 깨끗하게 닦은 채 가격표를 붙여 내보내기도 합니다. 믿을만한 가격 책정을 위해 이곳 선생님들은 웬만한 브랜드는 틈틈이 가격 조사를 거치는가 하면 때로는  ‘짝퉁’이냐 ‘진품’이냐 판별 회의를 거치기도 한답니다. 
 
물론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값을 받고 판매되진 못하지만, 커다란 자루에 담겨진 이 친구들 역시 제3세계로 보내진다고 하네요. 저는 다행히도 무사 통과했습니다. 5500원. 가격표도 새로 받았습니다.
 
“이 구두는 진짜 예쁘다. 선생님, 이거 여기서 바로 저한테 파시면 안돼요?”
자원봉사자 한명이 다른 친구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옆을 둘러봐도 버려졌다고 하기엔 꽤 상태가 깨끗하고 멋스러운 신발들이 적지 않습니다.
“안돼요. 그러면 여기서 예쁜 물건들 다 낚아채고 실제 매장에서 구매하는 손님들은 어떡해요. 이곳에선 어떤 물건도 사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 돼 있어요.”
 
아쉬워하는 자원봉사자의 표정을 뒤로 하고 상자에 담겨진 저는 하룻동안 이곳에 더 머문 뒤 내일이면 판매 매장으로 옮겨질 겁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진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디에서 저를 만나건 그건 다 운에 따른 거랍니다.

◆기분 좋은 보물 찾기, “쇼핑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다음날 이른 아침, 제가 도착한 곳은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의 아름다운 가게. 그런데 웬걸, 물류센터에선 어지럽게 얽혀있던 친구들도 새롭게 진열을 하고 보니 꽤나 번듯해 보입니다.
 
색깔별로, 종류별로 차곡차곡 진열해 놓은 의류들 옆으로 액세서리며 신발, 가방, 장식품들이 보기 좋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물건의 가격은 처음 판매 가격의 10% 정도. 물건의 상태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긴 하지만 눈 여겨 살펴보면 꽤 상태가 좋은 고급 브랜드의 의상들도 5000원 안팎의 싼 가격에 구할 수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모피코트와 같은 고가의 제품도 상상하지 못할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하루종일 붐비는 손님들 사이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 끝에 드디어 누군가 저를 집어 올렸습니다. 쓰레기통으로 향할 줄 알았던 제가 다시 새 생명을 얻은 겁니다. 저를 구입하느라 쓰여진 돈은,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해, 또 국내의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데 두루두루 쓰여진다고 하니 저를 구입한 새로운 주인은 아마도 “복 받으실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