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본관 27층. 오전 7시 집무실에 도착한 박삼구 회장은 별도의 취임식을 가지지 않은 채 사장단들과 인사를 나눈 후 간단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 “워크아웃, 빨리 졸업해야죠.”
11월10일,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G20 비즈니스 서밋 환영 만찬에 참석한 박 회장은 취재진에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 “베트남 투자, 강화하겠습니다!”
11월11일,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 호텔. G20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한 그는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를 만나 베트남에 대한 투자강화와 지속적인 관계개선을 약속했다.
‘돌아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의 경영행보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당초 지난 1일, 15개월만에 경영일선에 복귀하며 첫 출근했을 때만 해도 박 회장을 둘러싸고는 ‘조용한 복귀’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7월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의 갈등으로 그룹 회장에서 스스로 물러난 이후 1년3개월만의 복귀인데다, 경영 실패에 대한 비판과 책임여론이 있는 점, 조기에 경영정상화를 이루겠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소리없는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조용한 복귀, 그러나 빨라진 행보
당초 전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통해 복귀 후 첫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박 회장은 특별한 메시지를 발송하지 않은 채 계열사 사장단으로부터 간단한 인사와 업무보고만 받았다.
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의 경영복귀와 관련해 따로 취임식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형식적인 것보다는 조용히 내실을 다져간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적인 행보를 보이던 박 회장은 G20 행사를 기점으로 보폭을 넓히고 보행속도도 한층 높여가고 있다.
지난 10일 ‘G20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하는 CEO가 아님에도 그는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모습을 드러내며 경영 복귀 후 일주일만에 첫 대외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어 다음날인 11일에도 임피리얼 팰리스호텔을 찾아 응웬 떤 중 베트남 수상을 만나 양국간 교류 활성 방안 등에 대해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그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베트남 사회공헌 활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며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앞으로도 교류·협력을 더욱 활성화해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한층 빨라진 박 회장의 행보에 대해 G20 정상회의와 비즈니스 서밋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복귀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기대 반 우려 반’.
본격적인 복귀행보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박 회장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은 크게 양분되고 있다.
그룹이 빨리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위해 박 회장의 경영능력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그룹을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이 다시 복귀했다는 것에 우려감을 표하는 분위기도 포착되는 것.
우선 금호아시아나그룹측은 박 회장의 복귀배경에 대해 "박 회장을 구심점으로 워크아웃을 빨리 졸업하기 위한 것일 뿐 개인의 욕심이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룹내 계열사인 대한통운의 이원태 사장 역시 지난 4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고, 내년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박삼구 회장이 하게 될 것“이라며 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그의 복귀시점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조나 시민단체 등은 “그룹을 워크아웃으로 몰아간 장본인이 현장 직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상화해놓고 이제와 복귀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박 회장의 경영복귀에 반발하는 상황이다.
‘돌아온 장고’ 박삼구의 숙제는?
과정이야 어찌됐든 일단 경영일선에 복귀한 박삼구 회장으로서는 풀어야할 숙제들이 있다.
우선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에 가속도를 내 경영정상화를 이뤄내야 하는 게 급선무다.
박 회장 본인도 복귀 전 직원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채권단과 맺은 경영정상화 계획을 성실히 실행해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을 조기에 정상화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진 바 있다.
따라서 박 회장은 앞으로 재무건전성과 실적상승을 위한 구조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채권단이 경영중인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등 그룹 주력계열사의 실질적 지배권을 찾아오기 위한 자금력을 키우는 방안에 주력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영정상화 과정 중 하나인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것도 박 회장이 신경써야할 중요한 부분이다.
통상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들은 11월 말까지는 내년도 사업계획 초안을 작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룹의 전략경영실이 전체적인 밑그림에 맞게 각 사업계획을 수정하고 12월 말쯤 최종 내년도 사업계획(목표 매출과 영업이익 등)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전문경영인인 박찬법 회장이 물러난 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회장 없이 3개월을 보낸 만큼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대한통운 등 주요계열사의 2011년 사업계획 작성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5개월의 공백 아닌 공백을 가진 박삼구 회장. 경영정상화와 내년 사업 밑그림 만들기를 어떻게 진행해 나가느냐가 그의 부활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듯하다.
박삼구 회장의 ‘복귀’ 징후들
이번 박삼구 회장의 복귀는 사실상 올 들어 줄곧 예견된 사안이었다.
지난 5월 모친 고 이순정 여사의 발인 이후 건강이 회복되자마자 매일같이 회사로 출근해 주요사안을 직접 챙겨왔던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갈등을 빚으며 동반 퇴진했던 동생 박찬구 석유화학부문 회장이 지난 3월 다시 경영전면에 나선 것도 박 회장의 복귀설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 지난 7월에는 ‘형제의 난´ 이후 그룹을 이끌어온 전문경영인 박찬법 회장마저 사퇴하며 수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박 회장의 경영복귀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당시 박 회장은 박찬법 회장이 물러난 이틀 뒤 전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경영복귀’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