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만 해도 ‘월드’니 ‘국제’니 하는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다종다양하지 못했고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듯했다. 문화라면 글쎄 전통 차문화를 재현하려는 시도로 보이는 ‘궁중다례’ 시현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품 노래자랑이 문화일까?
이 극적이고도 포스트모던(?)한 풍경은 일견 서로 이질적인 듯 보이지만 시중의 짝패처럼 차문화 재건이란 꿈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수리들과 상궁들이 왕비에게 차를 바치는, 민속촌에서나 봄직한 볼거리 수준의 ‘궁중다례’는 역설적이게도 차문화의 부재를 방증할 뿐이다. 또 경품 노래자랑은 에두름도 은유도 아닌 차문화의 실종을 씁쓸하게 보여준다.
이런 징후는 티 월드 페스티벌 밖의 거리 곳곳에서도 감지된다. 차를 가르치는 선생들부터 차를 판매하는 차상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말투와 몸가짐, 표정, 하다못해 의복에서조차 어떤 획일적인 '전통다례'의 기표들이 확인되는 것. 그리고 그 기표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스럽고 배타적인 인상을 풍기기에 충분하다.
이들이 독점한 차문화, 전통성, 다선일미, 다도, 한복, 구증구포, 고유성 따위 등은 오직 그들만의 것으로, 그들 밖의 세상에선 단지 따분하고 어려운 이야기일 뿐이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차 소비자들과 차에 관심을 가진 불특정 다수를 배제시킨다. 예컨대 차 마시는 방법은 말 그대로 '방법'의 정도를 훌쩍 뛰어넘어 '도'나 '선'의 경지에서 이야기되고, 차를 말하는 언어 또한 사전 지식이나 공부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처음 매장을 열었을 때 먼저 커피를 '공부'하고 커피의 '도'를 논하며 커피를 마셨던가? 허영의 혐의가 있을지언정 그동안 겪지 못한 맛과 스타일을 경험한 후에 공부는 부차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각양각색의 제2의 스타벅스들이 지나칠 정도로 번성하고 있다.
반면 차는 문화와 전통, 형식 따위가 맛에 우선해 논의되고 재현된다. 기껏 '건강에 좋다'고 하는 한두가지의 지리멸렬한 담론과 소문에 묻혀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공부해야 할 음료로, 혹은 '가시오가피'와 같은 건강음료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 자주 "차는 어려워요"하는 볼멘소리라든가 난처하게도 "이 차는 어디에 좋아요?"하는 질문을 받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목적을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 나갈 출구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 말했다. 언어탐구를 통해, 신의 현존이니 영혼불멸이니 진리니 하는 사이비 문제 자체를 해소하는 것이 곧 철학자의 역할이라는 것. 차를 둘러 싼 저 무거운 담론들과 형식들, 난해한 언어들 또한 파리통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차는 고상한 지식의 영역이 아니고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도 아니며 증상에 따라 처방할 수 있는 의약품도 아니다. 차는 무엇보다도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이며 덧붙이자면 여러모로 유익하고 맛있는 음식의 한가지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길 바라는가? 함께 차를 나누고 공감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차 좀 마셔보겠다는 이들에게, 차 좀 마셔봤다는 사람들이 전통과 형식과 학문과 도의 경지를 장황하게 설파하며 지금처럼 허장성세를 부려선 곤란하다. 파리통에 빠진 끽다거(喫茶去, 차 한 잔 마시게)에게 빠져 나갈 출구를 가르쳐 주는 것, 그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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