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식이란 표현은 좀 그렇지 않나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 일부 언론에서 ‘대관식’이란 용어를 쓰자 한 삼성 관계자가 “너무 하다”며 던진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외아들 이재용 부사장의 승진가능성에 대해 ‘우회적인’ 발언에 그쳤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7일 “(승진계획이) 있다”고 분명히 밝힌 만큼 삼성의 ‘이재용 시대’는 사실상 개막됐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특히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다시 승진인사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은 ‘포스트 이건희’ 시대가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에서 이재용 부사장이 ‘부회장’으로 두 단계 승진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지만 일단 ‘사장’으로의 한 단계 승진이 유력해 보인다.
 


치밀했던 시나리오, 맞춰지는 퍼즐

이재용 부사장의 승진 여부가 공식화되는 과정은 잘 짜여진 한편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하다.

이건희 회장의 복귀만 해도 드라마틱했다. 지난 1월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10' 전시회장에서 취재진과 만났을 때만 해도 이 회장은 "(경영 복귀는) 아직 멀었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같은 달 21일 'CES 2010' 귀국길에서는 "(경영 복귀를) 생각 중이다“고 말을 바꿨다. 

이어 2월5일 '호암 100주년 기념식'에 참가해 "회사가 약해지면 도울 것이다"며 간접적인 복귀의사를 드러내더니 급기야 3월24일 “지금이 진짜 위기다. 삼성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경영 복귀를 공식화했다. 

표면상은 삼성전자 회장이지만 그룹 전체를 지휘하는 위치에 선 이 회장은 ‘위기론’을 토대로 지난 8개월간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 삼성전자의 위력을 또 한번 세계시장에 각인시켰다.  '이건희 리더십'의 건재를 대내외에 과시하며 삼성의 변화도 주도했다.

자신의 ‘복귀 워밍업’이 완료되자 이 회장은 아들 이재용 부사장의 ‘경영전면 배치’를 위한 현실화 작업에 돌입했다. 우선 메시지부터 담았다. 

10월 12일 멕시코 출국 길에 오른 이 회장은 “어느 시대이건 조직은 젊어져야 한다”고 언급한 데 이어 같은달 30일 귀국길에서도 "21세기는 세상이 빨리 바뀌는 만큼, 판단도 빨라져야 한다. 승진할 사람은 해야 한다"며 이재용 부사장의 승진 가능성을 처음 시사했다.

열흘 뒤인 10월30일 “21세기는 세상이 빨리 바뀌기 때문에 리더는 젊어야 한다”고 말하더니 중국 광저우에서 귀국하던 지난 17일, 결국 이 부사장의 승진을 본인의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 회장의 메시지 변화는 이재용 부사장의 경영승계 스케쥴을 정밀하게 따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올 만 하다.

지난 11일 이 회장이 연말 인사와 관련, “되도록 넓게 하고 싶다"고 말한 것도 ‘이재용 체제’ 구축을 위한 세대교체형 인사를 감안한 분위기 조성용으로 보인다.

삼성 안팎에서 삼성을 이끌고 있는 60살 이상 최고경영진이 대거 일선에서 물러나고 42살인 이 부사장과 가까운 40대와 50대 초반의 인재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발탁 인사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경영승계 속도 빨라졌다

이재용 부사장의 승진을 기정사실로 만든 이번 이건희 회장의 ‘확인’ 발언은 그동안 이 회장이 보여준 제스처와 비교할 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특히 중국으로 출국하던 지난 11일만 해도 그는 "승진해야할 사람은 승진해야죠"라면서도  이 부사장의 승진 여부에 대해선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6일 뒤인 17일 그는 이 부사장의 승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방점을 찍듯 “네”라는 긍정의 답변을 분명히 했다.
 
이 마지막 방점을 통해 이 회장은 아들의 후계자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 회장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경영권 승계작업을 본격적으로 가시화할 때가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08년 7월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선 이 회장은 당시 이재용 부사장으로의 후계승계 가능성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본인의 능력이 닿아야 하고 그 능력이 후계자로 적당치 않으면 이어받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이 회장은 이재용 부사장의 경영능력을 담금질하며 대외적으로도 신뢰가
쌓이는 시점을 가늠해 왔고,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험대 오른 이재용, 경영능력은?

이재용 부사장의 승진이 기정사실이 된 만큼 이제 관심은 ‘포스트 이건희’의 역할을 그가 잘 해낼 수 있을까에 쏠린다.

이 부사장이 몸담고 있는 삼성전자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을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반도체와 LCD 등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일단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에 ‘긍정’의 표를 던지는 분위기가 대세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성장세가 피크를 지났다는 일부 평가와 함께 삼성전자의 중장기 성장 잠재력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 약화되고 있는 점은 이 부사장에게 큰 부담이다. 또 과거 인터넷 관련 업체인 'e-삼성' 등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후 계열사들이 부실을 떠안은 아픈 경험이 있어 이 부사장은 여전히 자신만의 확실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사장으로 승진한 후 이 부사장이 맡게 될 직책 역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삼성안팎에서는 이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할 경우 삼성전자 이외의 계열사 사장이나 삼성전자 사업부 사장,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 등을 맡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제외한 채 다른 계열사를 맡는다는 것은 실익이 없어 보이고, 삼성전자 사업부를 책임지는 것은 경영 실적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현재와 같은 자리에서 사장으로 직급만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삼성관계자는 “구체적인 업무영역은 12월 중순께 인사가 나봐야 알겠지만 현재의 위치보다 더 넓은 업무영역을 맡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 부사장의 권한과 책임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사장 약력

1968년 출생
1984~1987년 경복고등학교
1987~1992년 서울대 동양사학과
1991년 삼성전자 신입사원 입사
1995년 게이오기주쿠대 석사
2000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박사(수료)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2003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
2004년 S-LCD 등기이사
2007년 삼성전자 전무
2009년 삼성전자 부사장, 최고운영책임자(C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