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몸살을 앓은 듯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이 처연하게 와닿는 계절이다. 숲은 우거지면 우거진대로, 휑하면 휑한대로 우리에게 아낌없는 자연미를 선사한다. 특히 초겨울을 앞둔 이맘 때의 지리산 자락은 만추의 향연으로 형형색색 오색 물감이 뿌려진 듯 극치의 아름다움을 뽐낸 뒤, 지리산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색과 풍광으로 색다른 묘미를 자아낸다.

지리산은 너르고 깊은 품에 걸맞게 많은 명승지를 품고 있다. 특히 지리산 여행길의 들머리 혹은 날머리에 해당하는 함양은 결코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은, 그러나 조용한 사색의 여행지로 최고의 품격을 지닌 땅이다. 때문에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와 전통의 고장이다.

함양은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정기로 사계절 청정한 기운이 휘돌면서 빚어낸 '함양 8경'을 품고 있다. 천년의 숲과 구슬 같은 계류가 흐르는 골짜기, 그리고 곧은 선비정신이 살아 숨쉬는 땅, 함양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천년의 숲 상림

함양 8경 중 첫째로 꼽히는 상림(上林). 숲과 연못, 그리고 잘 가꿔진 숲길을 소담스럽게 덮고 있는 활엽수 낙엽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가을이 저만큼 지났건만 숲은 좀처럼 옷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 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도 늦가을의 바람이 싫지 않은 듯 아쉬움 섞인 몸짓을 하며 서걱댄다.

상림은 1100년 전 함양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 선생이 낙동강 지류인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에 나무를 심어 숲으로 가꾼 한국 최초의 인공 조림지다. 상림은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있지만 낙엽이 쌓인 고즈넉한 요즘이 숲을 감상하기엔 최고의 계절이다.

상림의 원래 이름은 대관림(大館林)으로 '대자연의 쉴 만한 숲',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큰 숲'을 의미한다. 요즘의 자연휴양림을 이미 천여년 전에 조성했던 것이다. 상림은 학술적 가치와 보존 가치가 있어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숲 안에는 '사운정' '함화루' '최치원신도비' 등 다양한 문화유적도 있어 한나절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인월에서 시작하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은 뒤 서울로 오기 전 함양에 들러 숲길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함양읍에서 가까워 쉬엄쉬엄 걸어서 가도 된다.



정자 문화의 정수 화림계곡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물이 함양군 서하면과 안의면을 지나면서 만들어낸 골짜기가 화림동 계곡이다. 화림동(花林洞)은 꽃과 숲이 있는 아름다운 동네라는 의미로, 화림동을 흐르는 물을 '금천'이라 한다. 또 짙은 물빛이 푸른 구슬과 같다고 해 '옥류수'라고도 한다.

화림동계곡은 남성적인 호방함과 기를 맘껏 펼쳐 보이며 쪽빛 물과 기암괴석 위에 올라앉은 정자가 압권이다. 이 지역은 한국 정자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옛 선현들이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뜻으로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라고 했지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바로 이 계곡이다.

특히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 등은 굽이치는 계곡과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자아내, 바쁜 일상을 잠시 접고 물소리에 귀 기울이면 일상의 스트레스를 훌훌 털고 평정심을 되찾는 소중한 여행이 될 것이다.

화림동 계곡에는 선비들이 걷던 옛길 6.5㎞를 '선비탐방로'로 개설해 가족과 연인이 계곡을 따라 가벼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아름다움 삼매경 용추계곡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우뢰와 같고, 소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곳. 여기에 수많은 사연과 전설을 품고 있는 이곳은 예부터 어리석은 사람도 이 계곡에 들면 '아름다움 삼매경'에 빠진다고 했을 만큼 천혜의 아름다운을 지닌 용추계곡이다.

용추계곡엔 신라시대 각연조사가 창건한 '장수사'에 딸린 4대 암자 중의 하나인 '용추암'이 있다. 한국전쟁 때 장수사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용추암이 '용추사'로 이름을 바꿔 남아 있다. 이무기 전설이 있는 용추폭포, 무학대사가 숨어 지냈다는 '은신암',  매 모양의 매바위, 삼형제의 우애가 깃든 삼형제 바위, 자연 속의 휴양소 용추자연휴양림, 신라시대 이야기가 있는 용추사 일주문 등 멋스런 풍경과 함께 역사와 전설이 공존하는 곳이다.

인근에 기백산, 금원산, 황석산, 거망산 등이 있어 용추계곡 10여㎞를 걷다 내처 산을 오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주인을 위한 허삼둘 한옥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한옥으로 조선시대 특유의 가옥구조를 가지고 있는 허삼둘 한옥은 상량묵서명에 '세재무오구월상량(歲在戊午九月上樑)'이라 쓰여 있어 건립연도가 무오년(戊午:1918)임을 알 수 있다. 윤대홍이란 사람이 진양 갑부 허씨 문중에 장가를 들어 부인 친정의 도움으로 허삼둘과 함께 지은 집으로 알려졌다.

출가한 딸을 위해 지은 듯, 당시의 시대상에서 과감히 탈피해 여성중심의 공간배치와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가 앞 툇마루를 열면 바로 밖으로 연결되는 등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가옥이다. 특히 'ㄱ'자의 꺾이는 모서리 부분을 안쪽으로 한번 접어 생긴 공간에 배치한 부엌은 매우 특이하다. 부엌은 거의 오방형인데 꺾인 부분에 선반과 시렁을 걸어 가사활동이 편리하도록 배려했다.

또 가옥의 이름을 남자 주인의 이름이 아닌 여자 주인인 허삼둘의 이름을 따른 것도 특이하다. 주요 건물로는 사랑채, 안채, 곡간, 행랑채, 바같 사랑채 등이 있다. 중요민속자료 207호.



선비의 혼이 깃든 남계서원

남계서원(藍溪書院)은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지어진 서원으로 개암 강익 선생이 1552년에 건립했다. 전형적인 서원의 배치형태를 갖춘 남계서원은 '일자식'으로 홍살문부터 풍영루를 지나 명성당 강당을 중심으로 거경재와 집의재가 양 옆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연꽃을 상징해 '애련헌'의 현판이 있는 동재와 매화를 상징해 '영매헌' 현판이 있는 서재가 정원을 아름다운 한편의 시로 엮어내고 있다.

퇴계 선생이 지리산 유람을 하며 성리학의 대가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학문을 칭송한 7언 절구 시는 실천유학의 학문을 구축한 일두의 정신적 지향을 인정하고, 함양의 학문적 가풍을 퇴계 선생이 높이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원 앞을 흐르는 남계천에서 이름을 따 '남계서원'이라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유일하게 경남에서 훼철되지 않은 서원으로 그 이력을 당당히 하고 있다.

초겨울에 접어든 지리산 자락으로 떠난 여행자들이 명성당과 풍영루에 올라 선비의 고고한 꿈을 학처럼 품고 살았던 유생이 되어봄직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