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제일모직은 이탈리아의 라스포르티바 등산화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편집샵에서 신발만 팔 뿐 아직 의류, 장비를 갖춘 토털 아웃도어브랜드로 시장에 나선 것은 아니다. 
라스포르티바는 전 세계 아웃도어 시장 17위의 전문 브랜드다.

제일모직은 해외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아웃도어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얘기가 오간 것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웃도어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신규사업팀을 꾸리고 미국, 영국 등의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와 접촉했고 라스포르티바를 최종 선정했다.
 
이후 라스포르티바와 계약체결을 눈앞에 둔 채 1년 반이 지났다. 계약조차 성사되지 않은 채 가시적인 성과는 거의 없는 상황. 비슷한 시기 아웃도어시장 진출을 계획한 휠라코리아와 패션그룹 형지가 올해 초 각각 자사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휠라스포츠와 와일드로즈를 론칭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심문보 제일모직 홍보부장은 “양사가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조율해야할 부분이 많다”며 “내년 초에는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의류 사업에는 워낙 변수가 많다"며 "사업을 진행하다가도 맞지 않을 시에는 다시 엎을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 제일모직이 주력할 건 따로 있다?
 
올해 아웃도어시장은 3조6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등산, 걷기, 자전거 등 국내 아웃도어 수요가 커짐에 따라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패션업계라면 당연히 눈독을 들일 만하다. 하지만 제일모직은 유독 미적대는 모습이다. 왜 그럴까? 심문보 부장은 “아웃도어가 물론 중요한 시장이지만 우리가 집중할 건 빈폴이 우선”이라며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건 캐주얼과 신사복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1989년 2월 출시한 빈폴은 제일모직 패션 직군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브랜드다. 올해는 약 50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한다. 최근 제일모직이 런칭한 망고 등 SPA브랜드와 해외브랜드가 뜨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를 합쳐도 매출비중은 5%에 그칠 뿐이다. 
 
제일모직의 아웃도어시장 진출도 이와 비슷한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제일모직 특유의 보수적인 사업스타일도 아웃도어시장 진출이 늦어지는 이유로 꼽힌다. 심 부장은 “아웃도어 브랜드를 런칭한다면 제일모직의 브랜드 입지 상 중고(中高) 시장을 노려야 할 것인데 이미 아웃도어 브랜드는 코오롱 등 빅3가 차지하고 있다"며 "시장진출 장벽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단 시장에 진입하면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게 분명하다. 국내 빅3에 속하는 한 아웃도어 브랜드 관계자는 “제일모직은 안정된 인프라와 자금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며 “제일모직이 얼마나 힘을 실어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서현 전무, 부사장 승진…패션 역량 강화되나?
 
지난 8일 단행된 삼성그룹 임원인사에서 이건희 회장의 차녀 이서현 전무(37)가 제일모직의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제일모직 내 패션군은 이를 적극 반기는 눈치다. 케미컬과 전자재료, 패션이 공존하고 있는 제일모직에서 무게 중심이 좀 더 패션 쪽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사장은 제일모직에서 중장기 전략 기획과 패션사업에 두각을 나타내 왔다. 서울예술고, 뉴욕 파슨스대 출신인 이 부사장은 미국 패션디자이너 협회인 CFDA의 보드 멤버에 선임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패션 전문가다.

 

지난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이래 캐주얼 빈폴을 메가브랜드로 성장시켰고 구호, 르베이지 등 여성복시장을 주도했다. 또 띠어리, 토리버치 등을 세계 유수의 브랜드를 유치하는 한편 한남동에 꼼데가르송 플래그십과 청담동에 편집매장인 10꼬르소꼬모 등으로 글로벌사업 다각화를 진두지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