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엄습하였을 때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빠른 속도로 경기가 회복하여 2011년에 국민 소득은 2만불에 시대에 재진입하였다. 경기지표도 상당히 좋은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그렇지 못하다.

내년(2012년)이 올해보다 우리나라 경제사정이 좋아질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29.1%에 불과했다(시장조사 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의 자체적인 설문 조사 결과). 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1년의 조사에서 나타났던 45.1%보다 훨씬 낮은 비율로서, 외형적인 지표와는 달리 국가경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임을 보여준다.

우리집 생활이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나아질 것으로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서도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절반이 안 되는 48.2%에 불과하였다. IMF 외환위기 시기 직후인 2001년의 54.9%에 비하여 역시 낮은 비율이다. 특히 젊은 층의 응답 비율이 낮게 나타났다.

우리집 생활이 작년보다 더 나아졌다는 응답도 28.1%에 불과했다. 가정경제가 괜찮은 집이라도 사회 분위기는 이렇게 되었음에 주목해야지만 자신보다 못한 상황의 사람들이 가지는 태도를 비난만 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복지 논쟁, 왜 치열한가
 
가정 경제는 크게 수입과 지출 두 항목으로 좌우된다. 수입 측면에서는 평균 국민소득의 향상과는 달리 양극화로 인하여 다수 서민 가정 경제에서 수입은 정체상태에 가깝고. 지출 측면에서는 각종 물가 상승으로 인하여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경제가 성장하면서 기업들이 수출을 잘하면 투자를 늘리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서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소비가 증가하여 다시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었다. 이제는 글로벌시대가 되어 해외법인 설립이 늘어나면서 대기업 성장에 비례하여 국내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더욱이 자금력 면에서 유리한 대그룹이 다수의 업종과 소비품목에 진출하여 대그룹들 내부에서 돈이 도는 비율이 늘어나 대그룹 외부로 돈이 흘러나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매출액 당 고용인원이 중소기업보다는 대그룹이 적은 편이면서 대기업의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 수의 비율은 대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낮은 편이다. 결국 대기업의 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를 제외한 다수의 중소기업에서는 대기업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가 기대만큼 생겨나지는 않고 있다.

국가 경제 성장이 분배에 개선 효과를 나타내던 시절과는 달리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소득 증가 효과가 일부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다수 국민들의 체감경기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근래 들어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치열해지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경제가 성장해도 서민경제가 올라오지 않으니까 복지를 통해서 보완해주려는 경향이 생기는 셈이다. 이는 서민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양극화는 소비계층 위축, 저출산과 노동력 감소로 이어지면서 경제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진보가 아닌 보수 쪽에서도 나름대로 복지에 대한 정책을 부각시키며 내세우고 있다.
 

 
◆복지 '정답은 없다'

복지에 대한 철학이나 세부 정책에는 한 가지 진리와 정답만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기 의견만 절대적으로 올바르고 다른 의견은 틀리고 나쁘거나 망국적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유일한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는 타협과 조율이 정상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복지가 정치권의 중심 화두로 등장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대립과 국민들 사이 갈등이 심화되고 있어서 분열에 대한 우려감도 들고 있다.

정치적인 논쟁에 국민들이 나서서 가세할 때에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일치하는 쪽에 편들면서 목소리 높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자신이 지지하고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이라도 사안에 따라서는 동의할 수도 있고 반대 의견을 가질 수도 있는데 사안에 관계없이 무조건 따르도록 유도하고, 실제로 그렇게 따르는 모습이 선거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무상급식에 관련된 최근 투표에서도 그러하였다.

서울에서 지역별로 아파트별로 색깔 구별이 뚜렷이 나타나고 고착화되는 것을 보게 됨은 선거 때마다 호남권과 영남권으로 고착화된 색깔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다. 국민들 사이 경제적인 양극화의 심화가 사고방식과 정서의 양극화도 초래하여 계층에 따른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복지 논쟁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양분화 되어 서로 공격하는 양상이 나타나지만, 보수와 진보는 둘 다 사회가 발전하고 행복한 국가로 나가는데 필요한 요소로서 공존해야하며 서로 배척할 요소가 아니다. 이는 집안에서 엄마와 아빠가 특성과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있을 때 건강한 가정으로 발전해 가는데 유리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부부 중 어느 한사람이 극단적이라면 이혼하는 것이 낫지만, 웬만한 정도에서는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부 두 사람의 미래와 아이들을 위해서 나은 길이다. 이처럼 극우파, 극좌파의 극단적인 경우에는 경계하고 배척해야하지만 일반적인 범위의 우파와 좌파는 서로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나가는 것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파를 극우파처럼 몰아붙이고 좌파는 극좌파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보수성향의 인사에 대하여 “수구꼴통.” 운운하는 거친 말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진보성향의 인사에 대해 “그 빨갱이가," 하는 얘기를 양식과 학식을 지닌 사람으로부터 들으면서 일반인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도 든 적 있다. 필자는 ”그 사람이 빨갱이는 아니겠죠. 요즘 세상에 무슨 빨갱이가 있어요“ 그 정도로 말하였다.( <- 이 부분은, 글의 길이를 줄이고자 할 때 우선적으로 삭제해도 되는 부분입니다)

◆보수-진보, 이분법적 생각은 위험
 
보수와 진보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보수와 진보로 가를 수도 없다. 그러나 자기 방식으로 단순화 시켜서 어떤 것에 어떤 식으로 생각하면 보수다, 진보다, 라고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 문제에서 100% 지원에 동의하면 왜 진보이고, 50% 지원에 동의하면 왜 보수인지에 대해서도 의아스럽다.
 
과거 나오던 얘기를 참고로 한다면, 50% 지원도 상당한 진보 속한다. 결국 10% 정도의 지원보다는 50% 지원이라도 내세워야지 표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바꾼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진보적인가를 경쟁하는 셈이 되고, 50% 지원을 보수의 첨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한편, 보수적인 인사 중에서도 무상급식 100% 지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무교육의 범주에 급식을 넣을 수도 있으며, 더욱이 저출산이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므로 다수의 국가는 100% 지원을 안 하더라도 한국적인 특성상 출산 장려라는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중에도 50% 지원조차 시기상조라고 보고, 10~20% 정도의 아이들만 지원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돈을 다른 부분에 투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복지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은 생존권의 1순위이므로 의료비 감당이 힘든 가정에 대한 지원 확충과 가정형편상 공부에 뒤쳐지는 아이들을 보조교육 시켜주어 학력수준을 적극적으로 끌어올려주는데 더 많은 돈을 투여한다면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미래의 성장기반을 마련해주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면 양극화의 궁극적 해소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지에서는 보수인가 진보인가에 관계없이,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복지에 대한 주장이 각자의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입각한 것인지 진정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내세우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정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위한 마음에서 나오는 주장이라면 자신과 똑같은 마음을 가졌으면서 방법론이 다른 사람 의견도 존중해야한다. 지향하는바가 같다면 자신은 똑똑하여 올바른 방법을 알고 다른 사람은 바보라서 틀린 방법을 내세운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정치인이나 일반인들이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똑같이 주장하면서 실천 방법과 과정이 다른 것에 대하여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태도를 종종 보인다.  서로 ‘망국적 복지’, ‘나쁜 투표’, 이와 같은 자극적 표현은 복지의 참의미를 추구하는데 걸림돌일 뿐이다.

의무교육 받는 아이들에게 100% 무상급식이 다른 많은 분야로도 100%로 계속 확대되어간다면 망국적 복지가 맞지만, 무상급식 안에서만 논의할 때에 망국이란 단어의 사용은 선동적으로 들린다. 무상급식 100%가 망국적 복지라면 50%도 망국적 복지이다. 50% 지원도 다른 분야로 계속 확대되어간다면 국가 경제가 감당하기 힘들어져서 망국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권리이지만,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서 하게 된 투표를 나쁜 투표라는 것 역시 선동적인 표현이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투표는 좋은 투표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 투표는 나쁜 투표라는 인식을 사람들이 가지게 된다. 결국 양측 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주장 밖에 안 된다.

어차피 복지가 사회의 주관심사가 된 상황에서는 복지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서 생각이 “같다, 다르다”는 개념을 “좋다, 나쁘다”라는 개념으로 변질시키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은 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고 화합으로 나가는데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