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가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의 4연임 도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황 회장은 2004년 증권업협회 시절부터 2009년 증권·선물·자산운용 협회 통합으로 출범한 금투협 초대회장으로 일해왔다. 내년 차기회장으로 연임이 되면 무려 11년의 임기를 채우는 셈이다.
협회장이 이름만 걸어놓는 명예직이 아닌 다음에야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인물이 장수한다고 해서 문제 삼을 건 없다. 황 회장 역시 자본시장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아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금투협의 기능과 역할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황 회장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얘기들이 많이 들린다. 정작 본인은 차기 협회장에 나서겠다고 한 적 없으나, 증권업계에선 그의 4연임 도전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황 회장의 장기집권으로 금투협이 파행적인 조직으로 변했다는 지적과 함께, 최근 각종 현안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차기회장 선출까지는 3개월 남짓 남았으나 벌써부터 '황 회장 물갈이론'이 여의도에 파다한 이유다. 최근에는 증권노조가 황 회장의 연임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는 등 안팎의 반발이 거세다.
◆업계 "황 회장, 성과는 많이 냈으나…"
황 회장은 1976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국제금융, 기업금융, 기업공개(IPO) 등 실무를 거쳐 1999년 메리츠증권 사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그는 업무 전문성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최고경영자(CEO)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금융투자협회로 자리를 옮긴 건 2004년. 당시 증권업협회장(현 금융투자협회)으로 연임을 노리던 오호수 회장과 메리츠증권에서 퇴임한 황 전 사장이 붙게 됐다.
증권업협회는 이때 처음으로 경선을 도입해 회장을 선출했는데, 오 회장이 유리하다는 예측을 깨고 황 전 사장이 승리하는 이변이 나왔다.
이를 놓고 여의도에서도 이런저런 설이 많았는데 '자리욕심'으로 비춰질까 소극적이었던 오 회장에 비해, 황 전 사장은 CEO시절 교분을 쌓은 업계인사들에게 각종 현안문제를 설명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선거는 '1사1표'로 진행됐는데 중소 증권사들이 황 전 사장에게 표를 집중한 것도 보탬이 됐다.
2004년 제45대 증권업협회장에 취임한 황 회장은 증권사 CEO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각종 현안에서 업계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해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연기금 등 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했고, 이 결과 2004년 12월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주식 10주 갖기 운동' 등 장기 주식투자 문화를 조성한 것도 성과였다.
2004년에는 증권업계의 퇴직연금 참여를 위해 '신탁업법 개정안'에 대한 업계 의견을 재정경제부에 제출했고, 2005년 신탁업법 개정으로 증권사들의 신탁 취급이 가능해졌다.
현재 연기금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증권사 퇴직연금 시장 활성화를 보면 황 회장의 노력이 업계발전과 제도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황 회장은 취임 말인 2007년 당초 했던 '단임약속'을 깨고 연임에 나섰는데, 본인의 성과에 대한 자신감과 주위의 권고가 컸다는 점을 들었다. 자본시장통합법 제정과 관련한 현안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여론을 일으킨 것도 배경으로 설명했다.
황 회장은 증권업협회장으로 1년반 가량 근무했는데, 다시 2009년 증권·선물·자산운용 협회가 통합해 금투협이 만들어지며 임기 3년의 초대회장이 됐다.
◆"금투협 조직 쇄신해야…" 파행운영 지적 왜?
여의도 증권가는 '황 회장 물갈이론'의 배경으로 협회가 회원사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업무를 지원해야 하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을 배경으로 꼽는다. 최근 증권사들의 이슈가 됐던 ELW 소송이 대표적이다.
이미 올 초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는데, 황 회장은 ELW 소송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다가 최근에야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협회 차원에선 올 6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움직임이 있었으나 대표이사 12명 등 총 48명이 기소당한 증권사들이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수수료 출혈경쟁, 수익사업 발굴, 해외사례 조사, 투자자보호 등 협회가 맡아야 할 업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적잖다.
콜차입 규제완화, 투자은행(IB) 육성 등 대형 증권사와 중소업체의 이견조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밖에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소형펀드 일방청산 문제는 흐지부지 됐고 자문형 랩의 수수료 체제개선도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금투협 조직구성의 파행성도 지적된다. 금투협은 현재 260여명의 인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임원급이 10명가량이고 부장, 팀장 등 중간관리자가 전체의 30%에 달한다. 실무직원은 팀별로 2~3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금투협은 2009년 각 협회를 통합해 출범하면서 회원사가 기존 30여곳에서 200여곳으로 늘었는데, 인원구성은 반대로 간 셈이다.
이러다 보니 회원사들의 자료수집은커녕 업무지원은 생각지도 못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황 회장의 재임기간이 워낙 길다보니 정상적인 승진인사에도 '발탁' 이나 '낙하산' 아니냐는 억측이 나오고, 조직 안팎의 분위기도 좋지 못하다.
"과거에는 협회 창립일에 업계 발전에 공을 세운 직원들을 포상했는데, 최근에는 국회 등 정치권 인사를 포상한다더라"는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은 협회 위상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연봉 5억 돈방석…협회장 중 '최고수준'
황 회장이 다른 협회와 비교해 2배 이상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점도 여론악화 배경이다. 실제 금투협은 협회 예산과 협회장 연봉에서 최고수준이다.
금융권 협회장만 보더라도 은행연합회장과 손해보험협회는 4억원 안팎이고 생명보험협회는 2억4000만원가량에 불과하다. 일반 기업 CEO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황 회장은 올해 5억4000만원(성과급 포함)이 책정됐다. 여기에 각종 업무추진비와 협회장이 활용할 수 있는 자금도 있다.
협회차원 예산을 보면 금투협이 책정한 게 올해 870억원가량으로, 은행연합회(230억원) 생보협회(155억원) 손보협회(148억원) 등과 비교하면 3~6배가량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