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 등으로 국내 증시가 유례없는 불황을 겪으면서 증권사들이 생존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상대적으로 불황의 칼바람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중소형증권사의 근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는 생사기로에 선 중소형증권사들이 불황기를 이겨내고 금융투자회사로서 사업을 계속 영위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도록 전문화·특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소형사, 불황 속 경쟁력 상실 우려

중소형증권사의 비즈니즈 모델 특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렇지만 국내 증시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등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서 증권사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고 새로운 수익구조 창출과 구조조정을 외면했다.
 
그 결과 60개 이상의 증권사가 위탁매매수수료(브로커리지)란 하나의 파이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에서 위탁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45~50% 수준이다. 수익의 절반을 위탁매매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온라인증권사의 등장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팀(MTS) 비중 확대에 따른 수수료율 급락 등으로 거래대금이 증가해도 수수료 수익은 개선되기 힘든 여건이 됐다.

이창목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위탁매매, 금융상품 판매, 회사채 인수 및 기업공개(IPO) 등에서 과당경쟁으로 인한 지속적인 수수료율 하락은 증권산업의 수익성 악화로 귀결된다"며 "높은 고정비용 등을 고려하면 현재 증권사의 비즈니스 모델로는 수익구조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대형사에 비해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형사는 업황 부진이 지속될 경우 경쟁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이 센터장은 "중소형사는 브랜드 경쟁력, 리테일 망 등에서 경쟁력이 열위에 있어 과당경쟁 구도 하에서는 자기자본 대비 수익 경쟁력이 대형사보다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특히 비용효율성이 좋지 않은 중소형사는 최근 대외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업황 부진으로 인한 수익 훼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대형사보다는 중소형사가 불황의 여파로 생존경쟁에서 탈락할 확률이 더욱 높다는 것이다.
 
◆美·日, 집중·차별화로 승부

미국의 중소형증권사들은 특정산업 및 고객 집중을 통한 차별화된 서비스로 살아남았다.
 
이 센터장은 "미국 중소형사들은 자본력이 열악할수록 특화·전문화된 업무를 영위하고 있다"며 "금융·IT·미디어·의료 등 고성장 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고객층을 주로 중소기업·비상장기업 등으로 특화시켜 차별화된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증권업계에서 단일 업무에 특화된 강소증권사 중 대표적인 곳이 그린힐(Greenhill)이다. 그린힐은 IB(투자은행)업무 중에서도 M&A와 기업구조조정 업무에 주력하며 자기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업무는 피한다. 리서치나 트레이딩 등 다른 업무를 영위하지 않고 IB업무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고객 자문과정에서 이해상충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린힐의 총수익(2010년 기준)은 2억8000만달러로 대부분의 수익이 재무자문에서 발생한다. 

파이퍼 제프리(Piper Jaffray)는 공공기관 재무자문 전문인력을 갖추고 주정부와 지방정부 및 비영리조직을 투자은행과 브로커리지 부문의 주요고객으로 공략하고 있으며 KBW는 은행주 리서치 전문 증권사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로 암흑기를 보낸 일본의 중소형사들은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니치 마켓(niche market)을 공략했다. 온라인증권사는 브로커리지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해외증권 및 수수료 체계 다양화, 다양한 정보 제공 등을 통해 차별성을 강화해 나갔다.

마쓰이증권은 주요 외환에 대해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도록 했고 무기한 신용거래서비스를 내놨으며 가부닷컴은 자동매매가 가능한 발주기능과 11종류의 기술적 분석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공했다.

온라인증권사가 아닌 중소형사들은 주로 기관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거나 중국주 같은 특정물에 특화된 매매를 강조하면서 차별성을 드러냈다. IT 등 특정섹터에 대한 M&A 자문 등으로 특화하며 차별성을 강조한 경우도 있다.
 

◆분사 허용 등 특화 촉진책 필요

국내에서는 중소형사의 특화·전문화를 유도하기 위해 분사(스핀오프; Spin-off)가 허용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핀오프를 통해 분리된 증권사는 특화된 업무에서 독립적으로 핵심업무에 집중하고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며 "증권사의 스핀오프를 허용해 탄력적이고 유연한 조직운용과 특화·전문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A란 증권사가 있다면 증권사를 분할해 자산관리와 소매영업은 A가 계속 맡고 투자은행과 법인영업은 신설된 B법인이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스핀오프가 허용되면 차별화된 사업모델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수익성이 악화되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신규사업을 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했지만 분사가 허용되면 회사 전체에 미치는 리스크가 줄어들기 때문에 특화된 신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분사가 허용될 경우 경쟁력 제고를 위한 증권사간 M&A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당국은 1분기 중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증권사 분사 인허가와 규제 관련 표준모델을 만들 방침이다. 다만 증권사 분사가 과당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김학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스핀오프에 대해 오히려 업계를 과당경쟁 속에 몰아넣을 수 있다거나 당국이 스핀오프로 라이선스 장사에 열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확실한 모델을 적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출범을 준비 중인 중소기업전용주식시장(KONEX)의 지정자문인으로 중소형사가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 특화를 촉진시킨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아울러 중소형증권사의 특화를 위해서는 자기자본규제(NCR)와 신용공여규제·장외파생상품 인가 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