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신 정부의 중요한 숙제이기도 한 대기업 정책. 경제민주화를 위한 필요한 규제냐 지나친 대기업 때리기냐를 놓고 상반된 의견이 존재하는 현 시점에서 대기업과 시민층의 입장을 대변할 전문가를 만나 '지상대담'을 꾸몄다.
- 현 정부의 대기업 정책을 총평한다면.
▶이철행(이하 이) : 사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대기업 관련 정책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정책을 입안하거나 적극적으로 정책을 진두지휘한 점이 없지 않은가. 때문에 현재 대기업 관련 정책의 대부분은 정부 주도라기보다는 여야 정치권에서 국회를 통해 발의되고 제도가 도입된 것들로 볼 수 있다. 정권 초기 이명박 정부가 내걸었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도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그렇게 큰 틀에서 실행된 것들이 많지 않다. 현 정부에서 주도한 대기업 관련 정책이라고 한다면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정도다.
▶김한기(이하 김) : 이명박 정부에서의 대기업정책은 한마디로 '편중정책'이다. 법인세 감세 혜택이나 출총제 폐지가 대표적인데, 지나치게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들을 쏟아내 오히려 기업간 양극화만 부추겼다고 생각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 방어' 정책을 많이 편 것 역시 결국 수출대기업의 이익 상승에만 기여했고 물가상승 등으로 인해 서민들과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힘들어졌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대기업 건설사들이 수주를 독차지했다. 대통령 본인이 대기업 CEO 출신이다보니 '친재벌' 쪽으로 기업정책이 많이 흘러갔다.
- 그래도 기업정책이 성과를 낸 부분도 있을 텐데.
▶이 : 정부가 기업활동과 서민생활에 부담되는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은 '한시적 규제 유예' 조치를 취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하다(한시적 규제 유예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9년 일정기간 도입됐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부처별로 유예할 수 있는 규제들을 취합해 구체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 제도로 인해 지방소재 기업이 신규로 공장을 준공할 때, 예전에는 까다로웠던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이제는 별다른 규제없이 가능해졌다. 2년 동안 한시적 규제를 유예해서 투자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그나마 잘한 대기업 정책이다.
- 대기업 정책으로 혜택을 본 업종이 있다면.
▶이 : 주류시장을 예로 들 수 있다. 막걸리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춘 것인데, 예전만 해도 막걸리시장에서는 업체들이 각 지역의 진입장벽을 넘어서는 게 힘들었다(정부는 지난 2010년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종래 발효조 6㎘ 이상, 제성조 7.2㎘ 이상이던 제조시설 기준을 각각 3㎘ 이상, 2㎘ 이상으로 완화했다). 하지만 정부의 진입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로 인해 국내에 막걸리산업이 크게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박근혜 신 정부가 내세운 재벌정책은 어떤가.
▶김 : 박근혜 당선인의 재벌정책은 사전규제보다는 사후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 정부에 비해 전향적이기는 하나 여전히 재벌총수의 사익 추구행위, 불평등한 지배구조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점을 지닌다. 기존 순환출자 체제로 인해 재벌총수가 소수의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현 구도, 즉 기존 재벌의 기득권을 계속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재벌의 사후규제와 관련해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 행위나 재벌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는 공약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약속과 신뢰를 중요시 여기는 박 당선인의 포부대로 정책이 실현될 경우 (재벌의) 사후규제만 잘해도 상당부분의 재벌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 대기업의 경제민주화 정책과 관련해 박 당선인은 ▲대형 유통업체 골목상권 진입규제 ▲신규 순환출자 금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제도 폐지 ▲총수일가 편법 상속 규제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발표한 행보를 빼놓고는 이제 대기업 정책이 서서히 수면에 드러나는 시기라고 본다. 따라서 현 시점에선 새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대해 가타부타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대기업 규제 관련정책의 경우 심사숙고한 결과물이 정책으로 현실화돼야 한다.
- 대기업 정책은 '양날의 칼'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 : 대기업 정책이 너무 재벌의 규제에 치중되면 안된다고 본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만 해도 그렇다. 과연 일감 몰아주기가 대기업에만 한정된 얘기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아니다. 대한민국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 있어 어느 정도의 일감 몰아주기는 있어왔다.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모기업이 커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기업은 대부분이 상장사여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어느 정도 확보됐다고 봐야 한다. 대기업만 문제가 있다는 시각에서 재벌정책을 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김 : 전경련이나 일부 대기업들이 대기업의 규제와 관련해 잘못 인식하는 게 하나 있다. 시민단체 등이 말하는 '재벌규제'란 대기업의 영업과 기업활동을 규제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재벌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규제하겠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대기업들이 불법 기업활동을 얼마나 많이 해왔나. 최근 재벌 총수들의 사익 편취행위와 관련해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전이나 사후 규제를 통해 대기업의 불법행위를 제거할 때 그로 인해 대한민국 경제가 더 활성화되는 법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업체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대등한 관계로 상호 성장해가는 단계에 있어 '재벌규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