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꼽히는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몇차례 부도위기를 극적으로 넘겼지만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이 많지 않아 결국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오는 3월12일로 예정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이자 59억원을 막지 못하면 부도에 몰리게 된다. 잔고가 5억원에 불과한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PFV: 용산역세권개발사업 시행사)로서는 이자비용조차 부담하기 힘든 지경이다.
위기극복의 희망은 법원에서 찾았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는 드림허브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중앙지법은 우정사업본부가 무단으로 용산부지를 사용한 비용과 이자를 지급하라는 원고의 주장에 일부 손을 들어주며 44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드림허브는 배상 지연이자가 20%에 이르는 데다 가집행 방식으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어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개발사업에 드는 30조원 규모의 비용을 감안하면 배상액은 큰 의미가 없다. 사업성 문제를 떠나 당장 103억원이 든 해외설계비도 갚아야 한다.
근원적 문제해결을 위해 대규모 금융지원이 필요한 시점에서 7일 드림허브는 이사회를 열고 5500억원 규모의 ABCP와 전환사채(CB) 발행 안건을 통과시켰다.
ABCP 발행은 사업이 무산되면 코레일을 상대로 민간 출자기업들이 받을 수 있는 미래청산자산을 담보로 한다. 코레일이 토지대금 반환확약을 해야 발행이 가능한 구조다. 공을 넘겨받은 코레일은 13일 드림허브에 CB 인수자금 마련 방안과 함께 사업 준공 시까지 자금조달 계획서를 제출하면 반환확약서를 쓸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코레일 측은 반환확약 요구가 눈앞에 닥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당사자간 역할과 책임을 다해 자금조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뜻을 함께하고 있다.
◆꺼지지 않은 소송 불씨
숱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있는 사업이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당장 18일 열리는 경영전략위원회에서 확약서 발행이 무산된다면 사실상 용산 개발은 물 건너가게 된다.
업계에서는 용산개발사업이 좌초되면 최소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 규모의 소송전이 난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선 2대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주주들이 코레일을 상대로 7000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드림허브 이사회는 최대주주인 코레일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겠다고 공표했다가 이사회 결정을 통해 백지화한 바 있다. 소송 내용은 ▲랜드마크빌딩 2차 계약금 4342억원 ▲토지오염정화 공사비 1942억원 ▲토지인도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410억원 등 3건이었다.
현재 코레일이 이사회의 반환확약서 제출에 조건부 동의를 하며 드림허브와 다시 손을 잡은 모양새지만 일각에서는 드림허브가 완전히 소송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다.
ABCP 발행을 위해 코레일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드림허브 측이 소송을 진행하지 않고 있을 뿐, 이후 상황은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코레일의 반환확약서를 제출받아 ABCP 발행이 이뤄지면 드림허브 측이 본격적으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렇게 되면 코레일은 담보를 제공하고 피고가 되는 황당한 상황을 맞게 된다. 코레일이 고심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 주민들 "제2의 용산참사 난다" 성토
지난 14일 용산구 서부이촌동 새마을금고 3층 회의실은 코레일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의 최대주주인 코레일 측 대표와 서부이촌동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주민들은 "코레일이 자꾸 말을 바꿔 사업 진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대주주다운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주민들은 사업 중단으로 위협받은 생존권 문제를 지적하면서 "더 이상 사업을 늦추면 죽으라는 것과 같다"며 "우선 주민보상을 실시하고 사업정상화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주민들은 이 지역이 용산역세권개발구역으로 묶이면서 6년째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부이촌동 주민대책협의회가 밝힌 개발구역 내 2300가구 중 65%가 3500만원씩의 채무를 지고 있는 것도 흐름을 같이한다.
약속한 보상을 믿고 대출을 받았다가 늘어난 이자부담에 집이 경매에 내몰린 경우도 빈번하다. 경매업계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서부이촌동 일대에서 일반주택과 아파트의 매물이 60개가량 등장한 상태다. 주택가격도 예전처럼 높지 않아 입찰가가 감정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법원경매정보에 따르면 감정가 8억1000만원인 용산구 이촌동 H아파트 85㎡는 현재 51% 수준인 4억1400만원에서 입찰 대기 중이다.
지역 상권도 사실상 붕괴 직전이다. 이 지역 상인회는 재산권이 묶인 이후 230여개의 상점 중 50여곳이 폐업했다고 밝혔다. 지역 주민들은 "우리가 개발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구역지정을 해 재산권 행사를 막아놓고 보상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했던 10개 이상의 비상대책위원회가 한 목소리로 재산권 행사가 가능한 이주대책기준일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단체행동에 나설 계획이어서 제2의 용산사태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